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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화엄교학의 여래장 이해와 대응=The Early Huayan School’s Understanding and Responding to Tathāgatagarbha Though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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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박보람 (著)=Park, Bo-ram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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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불교와 사회=佛教與社會=The Journal of Buddhism and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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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ume | v.11 n.1 특집 2: 문정왕후와 백곡처능의 호법 활동 |
Date | 2019 |
Pages | 1 - 31 |
Publisher |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연구원 |
Location | Gimpo, Korea [金浦市, 韓國] |
Content type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Language | 韓文=Korean |
Note | 저자정보: 충북대학교 조교수 |
Keyword | 여래장= Tathāgatagarbha; 공성= Śūnyatā; 공·불공여래장; 여래장불; 여래출현=Buddha of Tathāgatagarbha=如來藏佛; 지엄=Zhiyan=智儼; 의상= Uisang=義相; Empty Tathāgatagarbha=空如來藏; Nonempty Tathāgatagarbha=不空如來藏 |
Abstract | 고통 해결을 위해 참 ‘나’의 규명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는 무아적 이해를 특징으로 하지만,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유아적 해석도 불교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는다. 대승에 들어서면 여래의 열반을 여래의 상주로 재해석하며, 이를 계기로 “모든 중생이 여래의 신체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의 여래장이 대승의 대표적 유적 흐름으로 등장한다. 이후 여래장 사상은 대승불교의 두 축인 중관·유식학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화를 거듭해간다. 『승만경』에 보이는 여래장의 초기 변화는 여래의 상주, 불성을 중심으로 하는 불공(不空) 여래장에 번뇌로부터 완전한 여읨이라는 공(空) 여래장의 측면을 부가하여 유아적 흐름의 입장에서 무아적 흐름을 포섭하려고 하는 시도이며, 이러한 시도는 여래장 사상이 일단락되는 『보성론』 이후 인도와 티베트에서 계속된다. 중관학파는 무아적 흐름의 대표인 공 사상의 관점에서 여래장 사상을 변용하여 포섭하는데, 그 핵심은 여래의 신체인 여래장을 공성으로 이해하는데 있다.
이처럼 여래장 사상은 ‘여래장 사상’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부르더라도 단일한 체계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에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며, 이는 초기 화엄교학과 여래장 사상의 관계를 고려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초기 화엄교학을 선도한 지엄은 『승만경』 이래 사용되어 온 불공·공 여래장의 아이디어를 채용하지만 불공덕(佛功德)의 불공·번뇌의 공 여래장을 진심인 진여 그 자체가 불공이면서 공이라는 여래장으로 변용한다. 이 변용을 통해 지엄은 그의 법계연기 체계 내에서 정연기와 염연기에 걸쳐서 관계하는 여래장 자체에는 번뇌라는 개념을 아예 상정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의상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여래장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여래장의 여래 → 중생이라는 불가역적 단방향성을 극복하고, 여래 → 중생 → 여래라는 원융한 사이클로 치환한 다음 이것을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 자신의 일로 등치시킨다. 이를 통해서 의상은 유적 흐름의 여래장 사상을 무적 흐름의 공성으로 이해함으로써 유무의 중도로 여래장 사상을 해석한 후, 이를 다시 나 자신의 여래출현으로 승화시킨다. Buddhism, which focuses on the identification of true 'me' to solve the fundamental suffering of life, is characterized by the interpretation of me as selfless, but from a very early stage of buddhism, the interpretation of me as self also appears as an important axis of Buddhism. Mahāyānabuddhism reinterprets the nirvana of tathāgataga as the permanent residence of tathāgataga, which makes tathāgatagarbha, a representative flow of the interpretation of me as self, born.
Since then, tathāgatagarbha thoughts are influenced by Yogacāra thoughts, but rather Mādhyāmika thoughts is more actively embracing tathāgatagarbha thoughts. Its key is to understand tathāgatagarbha which is the body of tathāgataga as śūnyatā. It makes the selfinterpretation and nonself-interpretation harmonize.
Based on the thoughts of nonempty tathāgatagarbha (不空如來藏) and empty tathāgatagarbha (空如來藏), Zhiyan (智儼) and Uisang (義相) included śūnyatā, a kind of nonself-interpretation, on tathāgatagarbha, a kind of self-interpretation. This is similar to the case of Mādhyāmika school. Uisang further went from here to reinterpret tathāgatagarbha thoughts as the manifestation of tathāgataga. |
Table of contents | I. 서론 3
II. 여래장 사상의 전개와 대승불교의 수용 6 1. 불교 내 무아적 해석과 유아적 해석의 두 흐름 6 2. 대승경전의 여래장설과 중관.유식의 수용 8 III. 지엄의 여래장 이해와 의상의 재해석 15 1. 지엄의 여래장 이해: 불공.공여래장과 염연기불 15 2. 의상의 여래장 재해석: 여래장과 여래장불 20 IV. 결론 26 |
ISSN | 20929277 (P) |
DOI | 10.33521/jbs.2019.11.1.1 |
Hits | 67 |
Created date | 2023.12.26 |
Modified date | 2023.1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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