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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지눌 사상의 고유성과 독특성 ― ‘중층적 인식구조’의 확립과 ‘통합적 이해체계’의 확보와 관련하여=The Characteristics and Uniqueness of Bojo Jinool’s Thought - Focusing on the establishment of multilayered thought and integrative understanding system
Author 고영섭 (著)=Ko, Young-seop (au.)
Source 불교철학=Journal for the Study Buddhist Philosophy=佛教哲學
Volumev.9 n.0
Date2021.10
Pages35 - 75
Publisher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Institution for World Buddhist Studies
Publisher Url http://www.duwbsi.or.kr
LocationSeoul, Korea [首爾, 韓國]
Content type期刊論文=Journal Article
Language韓文=Korean
Note저자정보: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Keyword국학/한국학; 고유성; 독특성; 무신정권; 성적등지문; 원돈신해문; 간화경절문; 격외일문; the study of national classics/ the study of Korean classics; characteristic; uniqueness; military regime; the gate of equal concentration on both cessation and observation; the gate of faith and understanding on perfect and sudden enlightenment; the gate of shortcut approach on observing the key phrase; unconventional one gate
Abstract이 논문은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 사상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중층적 인식구조’와 ‘통합적 이해체계’의 확립과 관련하여 살펴본 글이다. 그의 만년작으로 평가받는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그의 성적등지문, 원돈신해문, 간화경절문의 삼문을 집대성한 문헌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눌은 고려 중기 불교 교단의 과제였던 선교의 일치라는 화두를 들고 철학적 체계를 확립하고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는 불교 교단의 갈등을 극복하고자 정혜결사의 주도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고, 사상의 통합을 통해 성취의 산물을 도출하였다. 먼저 그는 정혜결사(定慧結社) 당시 선교일치(禪敎一致) 혹은 선교일원(禪敎一元)의 화두를 타파한 뒤 다시 선 수행 중심의 선교 통합의 화두를 들었다. 지눌은 화엄종의 집성자인 법장(法藏, 643~712) 이래 돈교에 배대한 선법과 원교에 배대한 화엄의 5교판을 비판하고 선에도 원교적 특징이 있다고 보았다. 또 그는 간화선은 의리선적 경향과 참의(參議)의 성격을 지닌 화엄의 관행(觀行)을 뛰어넘는다는 점을 입증해 내었다. 그 결과 신라 통일기 이후 고려 초중기의 교단을 주도했던 화엄종을 왕실에서 밀어내고 고려 사상계를 선종이 주도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었다. 그리하여 고려 사상계는 종래의 ‘주교종선’(主敎從禪) 즉 교학을 주로 하고 선을 종으로 하는 지형을 ‘주선종교’(主禪從敎) 즉 선법을 주로 하고 교법을 종으로 하는 지형으로 전환되어 갔다. 고려시대의 철학 내지 불교철학은 교종이 주도하던 이전 시대와 선종이 주도하던 이후 시대의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전환은 당시의 정치적인 배경이 커다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고려 의종 24년(1170) 이래 원종 11년(1270)까지 선종은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제1기) 이후 최충헌-최우(이)-최항-최의(제2기) 그리고 김준-임연-임유무(제3기)의 무신 집권 시대에 약진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지눌은 선교일원 혹은 선교일치를 거쳐 성적등지문, 원돈신해문, 간화경절문의 삼문을 집대성하여 선법 우위의 사상적 기반을 확립하였다. 그리하여 지눌이 구조화시키고 체계화시켜낸 국학과 경학으로서 철학 내지 불교철학, 나아가 한국철학 내지 한국불교철학은 기존 사상의 물리적 종합(비빔/이론)에 머물지 않고 화학적 삼투(달임/실천)로 나아가 체화시켜낼 수 있었다. 지눌이 교를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격외의 한 문’[格外一門]으로서 간화경절문이 있음을 알게 하여 바른 믿음을 낼 수 있게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여기서 ‘격외’는 ‘교격 외’(敎格外)를 의미하며 ‘일문’은 ‘교격 외 선문’(敎格外禪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눌이 입론한 간화경절문은 ‘교격 외 일문’이기는 했지만 그는 종래의 교격이었던 『육조단경』의 성적등지문과 『신화엄론』의 원돈신해문을 버리지 않았다. 이것은 결사 당시의 선교일원 또는 선교일치의 화두를 껴안으면서 다시 선 수행 중심의 선교 통합의 화두를 놓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지눌의 중층적 사유 기반의 구조화와 체계화는 철학자이자 사상가로서 그의 기반을 확고하게 자리매김 시켜주었다. 이것은 분황 원효(芬皇元曉, 617~686)의 일심 해석의 폭이 넓은 지형과 속이 깊은 방법의 수립 이래 한국사상가들의 ‘중층적 인식구조’의 확립과 ‘통합적 이해 체계’ 확보라는 문제의식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and uniqueness of Bojo Jinool’s thought (普照知訥, 1158~1210) by focusing on his systems of multilayered thought and integrative understanding. Bupjipbyulhaengrokjulyobyungipsagi, one of his late works, is evaluated as a compilation of his thoughts on the three gates to Seon, namely, “the gate of equal concentration on both cessation and observation,” “the gate of faith and understanding on perfect and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gate of shortcut approach on observing the key phrase.” Jinool was a monk who lived during the mid-Goyro dynasty and tried to establish a philosophical system and ideological foundation based on his era’s task of harmonizing both meditation and doctrinal schools. To overcome the conflicts between the two schools, he founded and led a community of monks to practice both meditation and wisdom, and harmonized the ideas of the two different schools. In doing so, he emphasized the harmonization of the two Buddhist schools on an equal basis. Subsequently, he moved on and took up a position that put a little more focus on Seon meditation. Jinool’s views on Seon were different from Bupjang’s (法藏, 643~712) view, where Bupjang believed that the Seon meditation school corresponds to “sudden teaching” (頓敎), and the Huayan doctrinal school corresponds to “perfect teaching” (圓敎), which is considered to be superior to the former. However, Jinool believed that the Seon meditation school also had aspects that correspond to “perfect teaching.” Furthermore, he also proved that the Ganhwa Seon meditation even surpassed the methodology of the Huayan doctrinal school, the practice of which focuses more on theoretical Seon and repentance. The results of his analysis were significant. The Huayan school that had influenced the royal palace since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676) was forced out of the palace, and the Seon meditation school gained more influence. Thus, in the mid-Goryo dynasty, the trend of thought changed from “harmonization of both Seon and doctrine school with the supremacy of doctrinal school” to “harmonization of both Seon and doctrinal school with the supremacy of Seon school.” Specifically, during the first three stages of the Goryo dynasty when the military regime had the political power, the Seon School became more i
Table of contentsⅠ. 서언 37

Ⅱ. 국학의 고유성과 독특성 42

Ⅲ. 중층적 인식 구조의 확립 -사상의 형성과 구조 46

Ⅳ. 통합적 이해 체계의 확보 - 사상의 통합과 체계 52

Ⅴ. 한국학으로서 지눌 사상의 특징 61

Ⅵ. 결어 68
ISSN25863843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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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date2024.01.07
Modified date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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