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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 편집은 호탄(Khotan)에서 이루어졌는가=Was the Avataṃsaka Sutra Compiled in Khot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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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석길암 (著)=Seok, Gil-am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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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불교학연구=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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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ume | v.42 |
Date | 2015.03 |
Pages | 83 - 112 |
Publisher | 불교학연구회=佛教學研究會 |
Publisher Url |
http://www.kab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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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tion | Daegu, South Korea [大邱, 韓國] |
Content type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Language | 韓文=Korean |
Keyword | 『화엄경』=Avataṃsaka Sutra; 「보살주처품」=the “Chapter of the Bodhisattvas’ Staying Place” =菩薩住處品; 호탄=Khotan=于闐; 서북인도=northwestern India; 부파불교; 대승경전=Mahayana sutras; 역대삼보기=歷代三寶記=Lidaisanbaoji=Outlines of the Three Treasures throughout Successive Generations; 굴다삼장=堀多三藏=; 불탑신앙; Abhidharma Buddhism; the worship of stupas; Jñānagupta=闍那崛多 |
Abstract | 『화엄경』의 편집 장소에 대한 다수설의 견해는 호탄(Khotan, 于闐)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아시아를 지목한다. 그런데 논자는 이전의 논문에서 1) 『화엄경』이 편집된 불교사회는 불탑신앙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지역이었으며, 2) 대승경전에 대하여 ‘비불설(非佛說)’이라는 비난이 행해지던 곳이었고, 3) 동시에 대승경전에 대하여 ‘비불설(非佛說)’이라는 비난이 일어날 만큼 대승경전의 출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곳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곧 『화엄경』이 편집된 불교사회는 대승불전을 공공연히 비난할 수 있을 만큼 아비달마불교의 확실한 우위가 확보되어 있던 곳이며, 더불어 불탑신앙이 크게 유행했던 지역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화엄경의 분석을 통해 제시한 바 있다. 이 같은 결론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화엄경』 특히 『육십화엄』의 산스크리트본의 편집 장소로 호탄을 지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을 시도해보았다. 고찰을 통해 제시한 논자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호탄을 편집지로 지목하게 한 대본 『육십화엄』 산스크리트본의 출처로서의 호탄에 대한 문제이다. 『경기(經記)』와 『역대삼보기』 소재의 굴다삼장의 전언은 대본 육십화엄의 초기 유통에 대한 확증으로는 언급될 수 있지만, 편집의 증거로 제시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둘째, 「보살주처품」의 제국주처를 검토해보면, 대본 『육십화엄』 편집자의 지리적 시야의 중심이 호탄이라고 보기 힘들며, 오히려 서북인도 지역을 편집자가 가졌던 지리적 시야의 중심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셋째, 지분경은 물론 대본 『화엄경』의 편집과정에서 증보된 부분에도 성문·연각으로 표현된 부파불교를 의식한 대응들이 적지 않게 보이기 때문에, 대본 『화엄경』의 편집지는 적어도 4세기 중반 무렵까지도 부파불교가 우세한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넷째, 호탄의 불교 유적 중에는 대본 『화엄경』을 반영한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데, 대본『화엄경』편집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시기의 것이다. 그리고 굴다삼장의 전언은 호탄과 그 주변 지역의 『화엄경』 신앙이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경권신앙의 등장시기를 고려할 때, 호탄에서 편집이 이루어졌다기보다는 호탄이 편집된 대본 『화엄경』을 전해받았다고 보는 편이 좀더 적절해보인다. 다섯째, 이전의 논문에서 언급한 사항이지만 『화엄경』 역시 불탑신앙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탑신앙이 강성했던 지역을 역시 편집지의 조건 중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고려할 때, 논자는 대본 『육십화엄』의 산스크리트본 편집지로 호탄과 그 주변보다는 오히려 서북인도 지역을 고려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Many scholars theorize that the Avataṃsaka Sutra was compiled in central Asia, particularly in Khotan 于闐. In the author's previous paper, I assumed that the location where the Avataṃsaka Sutra was compiled would be as follows: 1) a society in which Buddhist stupas were actively worshipped, 2) where the Mahayana sutras were condemned as not being the Buddha's teachings, and 3) where the appearance of Mahayana sutras was so consistent such that the Mahayana sutras were so condemned. In other words, my analysis of the Avataṃsaka Sutra suggested that the area in which it was composed would have been a society where Abhidharma Buddhism was so dominant that Mahayana texts were publicly condemned, but also where the worship of Buddhist stupas was very popular. According to this previous conclusion, I explore in this paper whether the Sanskrit text of the Avataṃsaka Sutra, especially the 60-volume Sutra, was indeed compiled in Khotan. From this examination, I assert as follows. The first is the question of the Khotan provenance of the 60-volume Sanskrit Avataṃsaka Sutra, which originated the theory that the Avataṃsaka Sutra was compiled in Khotan. Although the word Khotan is found in the Huayanjingji 華嚴經記 (Postscript of the Avatamṃsaka Sutra) and Jñānagupta's 闍那崛多 words cited in the Lidaisanbaoji 歷代三寶紀 (Outlines of the Three Treasures throughout Successive Generations), this only confirms where the 60-volume Avataṃsaka Sutra was distributed early on, rather than being solid evidence for the location of compilation. Second, when examining the geographical locations mentioned in the “Chapter of the Bodhisattvas’ Staying Place” 菩薩住處品, I believe that the compiler of the 60-volume Avataṃsaka Sutra had the focus of their geographical horizon set for northwestern India rather than for Khotan. Third, there are many words that indicate conscious responses to Abhidharma Buddhism, such as Śrāvaka 聲聞 or Pratyeka-buddha 緣覺. These words are found in not only in the partial sutras of the Avataṃsaka Sutra, but also in the addenda that went into the full sutra. Therefore, I conclude that the place where the Avataṃsaka Sutra was compiled was dominated by Abhidharma Buddhism until at least the middle of the 4th century. Fourth, Khotan has some buddhist relics which are thought to reflect the Avataṃsaka Sutra, made not long after the compilation of the full Avataṃsaka Sutra. Also, Jñānagupta 闍那崛多’s testimony makes clear that the faith around the Avataṃsaka Sutra in and around the area of Khotan appeared from very early on. Thus, considering when this faith appeared, it is more likely that the compile |
Table of contents | Ⅰ. 문제의 소재 85 Ⅱ. 호탄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아시아 지역 편집설의 검토 86 Ⅲ. 간다라 ․ 호탄과 화엄대경의 편집 89 Ⅳ. 결론 107 |
ISSN | 15980642 (P) |
Hits | 218 |
Created date | 2021.06.10 |
Modified date | 2021.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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