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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니 료타이와 후카우라 세분의 학문과 방법=Studies and Methodologies of Hatani Ryōtai and Hukaura Seibun
著者 정유식 (著)=Jeong, Yu-shik (au.)
掲載誌 한국불교학=韓國佛教學
巻号v.78 n.0
出版年月日2016.06
ページ91 - 118
出版者한국불교학회
出版サイト http://ikabs.org/
出版地Korea [韓國]
資料の種類期刊論文=Journal Article
言語韓文=Korean
ノート저자정보: 도쿄대학교 박사
キーワード하타니 료타이=羽溪了諦=Hatani Ryōtai; 후카우라 세분=深浦正文=Hukaura Seibun; 근대 불교학=the Modern study of Buddhism; 연구방법=Study and methodology
抄録19세기 말,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은 근대화를 시작했고, 이 시기에 불교계에서는 난죠 분유 등, 해외 유학승들을 서구로 파견했다. 유학승들은 본래 목적대로 서구 근대 불교학을 습득하여 일본에 유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 20 년쯤 후에 해당하는 세대가 본 논문에서 다룬 하타니 료타이(羽溪了諦)와 후카우라 세분(深浦正文)이다. 이 두 학자는 메이지(明治) 시대 말기 혹은 다이쇼(大正) 시대 초기에 이미 서구 근대 불교학을 학습했고 전통적인 불교 연구법에서 벗어났다.
하타니와 후카우라는 근대 불교학 연구법에 매우 충실했다. 서구 근대 불교학의 기본 도구인 언어학, 문헌학, 역사학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운용할 능력도 구비하고 있었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고고학, 철학, 문학, 예술에까지 관심의 폭을 넓혀 나갔다. 자칫 세분화된 영역에 함몰될 수있는 불교 연구의 위험성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통섭적인 불교의 사상체계를 천명하라고 제안하거나, 문헌과 예술을 아우르는 균형 잡힌 연구를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토진종의 승려였던 후카우라에게 불교는, 언제까지나 他者이자 연구 대상일 수만은 없었다. 예를 들면, 그는 대승불설비불설 문제에 관한 논의 속에서, 대승 불교를 단순한 학문의 대상이 아닌 신앙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잘 보여준다. 그는 대승이,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佛說일 수 없다고 인정하지만 교리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불설이라고 주장한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하타니와 후카우라의 방법론은 현대 불교학의 방법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통해, 현대 불교학의 방법론 속에 근대 불교학의 방법론이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승불설비불설 논의에 나타난 후카우라의 견해는, 불교가 단순히 학문의 대상이 아니었던 대승불교도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이해하려는 현대 학자들에게 하나의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Japan began its modernization in the Meiji(明治) period in the late 19th century. At that time, the Japanese Buddhist community sent student monks to Europe where they studied modernized European Buddhism and brought it back to Japan. Hatani Rōtai(羽溪了諦) and Hukaura Seibun(深 浦正文) studied this modernized European Buddhism at the end of the Meiji era or in the early Taishō(大正) era, taking them away from traditional Buddhist research.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ir research.
They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linguistics, bibliography, and history, which were necessary for such study, and they had the ability to apply them. They also thought that knowledge of archeology, philosophy, literature, and art were necessary for the study of Buddhism. They also suggested that the world of Buddhist thought needed to be explained and presented integrated and balanced results of their research, which included everything from bibliography to art.
However, as monks of the Jōdoshinshū School(淨土眞宗), they did not consider Buddhism only a subject to be researched. For example, in the debate over whether Mahayana concepts were heterodoxy or orthodoxy, Hukaura perceived Buddhism from within, not without.(I’m not sure what this implies.) He insisted that Mahayana Buddhism was not pure Buddhist doctrine in the historical sense, but more of a dogma.

目次Ⅰ. 머리말 93
Ⅱ. 하타니 료타이의 학문과 방법 94
1. 생애 94
2. 연구 방법 94
3. 학문 태도 96
Ⅲ. 후카우라 세분의 학문과 방법 101
1. 생애 101
2. 연구 방법 101
3. 학문 태도 103
Ⅳ. 맺음말 105
ISSN12250945 (P)
ヒット数208
作成日2021.10.07
更新日期202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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