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呑虛 宅成의 생애와 사상 -- 한국불교사적 지위와 한국불학사적 위상=A Study on the Life and Philosophy of Tanheo Taekseong -- Position and Status in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m
著者 高英燮 (著)=고영섭 (au.)
掲載誌 한국불교학=韓國佛教學
巻号v.63 n.0
出版年月日2012.08.31
ページ41 - 79
出版者한국불교학회
出版サイト http://ikabs.org/
出版地Korea [韓國]
資料の種類期刊論文=Journal Article
言語韓文=Korean
ノート저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キーワード교선일치=Harmonization of doctrine and seon; 선교겸학=Combined learning of doctrin and seon; 불도유=Buddhism, Taoism and Confucianism; 포함삼교=Combination of three teacings; 화엄선=Huayan seon; 향상일로=One road of elevation
抄録呑虛宅成(1913~1983)은 가야산의 退翁性徹(1912~1993)과 함께 지난 20세기 한국불교계의 대표적 지성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해인사를 무대로 포효한 퇴옹성철이 법보종찰 ‘가야산의 호랑이’였다면, 월정사를 무대로 포효한 탄허 택성은 문수도량 ‘오대산의 사자’였다. 탄허는 敎를 주로 하면서도 禪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성철은 禪을 주로 하면서도 敎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들 두 사람은 동시대를 함께 호흡하면서 敎禪一致 혹은 禪敎兼學으로 언표되는 한국불교의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살았던 20세기는 극도의 혼란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계는 한국사회를 계도하는 주체로서의 존재감이 적지 않았다.
탄허의 인재불사와 역경불사는 산악신앙이 면면이 이어 내려오는 오대산 자락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되었다. 때문에 그의 저작 속에는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는 오대산의 정기가 깊이 투영되어 있다. 통일신라 이래 오대 산문은 문수보살의 상주처라는 인식을 넘어서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산문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승 한암(漢巖重遠, 1876~1951)의 유지를 이은 탄허가 오대 산문을 새롭게 확립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탄허는 오대산 수도원과 영은사 수도원의 운영을 통해 전통을 복원하고 인재를 양성하였다.
그는 그 역할이 끝나자 역경불사를 통해 또 다른 전통을 복원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생명체와 자연계의 관계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은 빼어난 선지와 섬세한 예지로 대중들의 삶을 허덕이지 않게 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허덕이는 삶에 획을 그어줌으로써 새로운 삶의 전기로 삼게 하고자 했다. 이것은 대중들에 대한 그의 자비심이자 보살행에 의해서 가능할 수 있었다. 탄허는 불·도·유 삼
교의 소통을 위해 한평생을 진력하였다. 그 결과 그는 대한시대 이래 불교와 유교의 독존적인 회통자가 되었다. 동시에 불교와 도교의 소통자가 되었다. 탄허에게서 불교와 유교의 회통과 불교와 도교의 소통은 그가 불도유 삼교를 차별이 아닌차이로서 보고자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평소에 그는 유언과 무언의 분별을 뛰어넘어 본래의 자리를 강조하기 위해 화엄의 언어를 원용하였지만 그는 화엄가이전에 선사였다. 그에게 화엄은 禪旨를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주요한 기제였다.
탄허의 向上一路 선풍은 화엄의 십주-십행-십회향-십지-등각-묘각의 수행위와 맞물려 이론과 실천의 체계화 및 求道와 濟度의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탄허는 의상 이래 지눌을 거쳐 이 땅에 전해져 오는 화엄선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온 화엄선의 계승자였다. 그리고 불도유 삼교를 하나의 틀에서 이해하려고 한 탄허의 관점은 삼교 중 불교의 覺을 최상위에 두고자한 性徹과 대비된다. 해서 불도유삼교를 종합적으로 조감하고 그 차이를 드러내었던 탄허의 문명사적인 안목과 문화사적인 비전은 이 시대의 우리가 흡수해야 할 지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탄허는 한국불교사에서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의 包含三敎 이래 불도유 삼교를 통섭한 교육자이자 사상가였으며 한국불학사에서 화엄과 선법을 통섭한 화엄선의 수행자이자 선각자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보여준 탄허 택성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은 다문화 시대와 다종교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전통의 계승과 다문화의 포용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사를 주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이 시대에 탄허를 다시 조명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With Toeong Seongcheol(退翁性徹, 1912~1993), Tanheo Taekseong(呑虛宅成, 1913~1983) has been known as the representative intellectual of Korean Buddhism world in the last 20th century. If Toeong Seongcheol was ancestral temple of Dharma-treasure ‘Gayasan Tiger' around Haeinsa, Tanheo Taekseong roaring around Woljeongsa was a place of enlightenment of Manjusri ‘Odaesan Lion'. Tanheo concentrated on doctrine but did not disregard seon and
Seongcheol concentrated on seon but did not disregard doctrine. While coexisting in the same age, two people became the representative people of Korean Buddhism that is mentioned as harmonization of doctrine and seon or combined learning of doctrin and seon. And the 20th century when two people lived was the age of extreme chaos but Korean Buddhism showed the perseverance to lead Korean society.
Tanheo's Buddha's affairs of a man of talent and Buddha's affairs to translate scripture was begun and completed in the skirt of Odaesan where mountain faith are succeeded. Therefore, the spirit of Odaesan coming from Baekdu-Daegan is contained in his book. Beyond the recognition that Odae mountain school has been the residence place of Manjusri since the age of Unified Silla, recently, the mountain school has been reborn as the school to participate in various problems of Korean society. It was possible because Tanheo who kept the desire of his master Hanam Chungwon(漢巖重遠, 1876~1951) established Odae mountain school newly. Here, Tanheo restored tradition and nurtured talented people by running abbeys in Odaesan and Yeongeunsa.
After his role, he went forward to restore another tradition through Buddha's affairs to translate scripture. His insight about life and nature enabled people to escape from hard life with outstanding foresight and detailed precognition. By drawing a stroke in their hard lives, he enabled them to have an opportunity to live a new life. It was possible because he had mercy toward people and good conduct. Tanheo devoted himself to the communication among Buddhism, Taoism and Confucianism. As a result, he has been an unique communicator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since the age of Daehan. In addition, he has been an communicator between Buddhism and Taoism. When it comes to Ta
目次Ⅰ. 문제와 구상 46
Ⅱ. 탄허 택성의 불교사적 지위 48
1. 산악신앙의 계승자 48
2. 오대 산문의 확립자 50
3. 전통의 복원과 인재의 양성자 52
4. 과거로 본 미래의 예지자 57
Ⅲ. 탄허 택성의 불학사적 위상 61
1. 불교와 유교의 회통자 61
2. 불교와 도교의 소통자 66
3. 화엄선의 계승자 69
4. 불도유 삼교의 통섭자 71
Ⅳ. 정리와 과제 74
ISSN12250945 (P)
ヒット数150
作成日2021.11.12
更新日期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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