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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三論 約敎二諦說의 연원에 대한 재검토=Reexamination on the Origin of Èr-dì(二諦) Theory of New Sān-lùn(三論) Tradition
著者 金星喆 (著)=Kim, Sung-chul (au.)
掲載誌 한국불교학=韓國佛教學
巻号v.45 n.0
出版年月日2006.08
ページ41 - 71
出版者한국불교학회
出版サイト http://ikabs.org/
出版地Korea [韓國]
資料の種類期刊論文=Journal Article
言語韓文=Korean
ノート저자정보: 동국대(경주) 불교학과 교수
キーワード삼론=Sān-lùn; 이제=Èr-dì; 약교이제; 무소득; 대량=Dài-liàng; 승랑=Seung-rang; 길장; Madhyamaka
抄録구마라습의 역경 이후 그 제자들에 의해 삼론이 중국 전역에 유포되긴 했지만, 성실론과 삼론을 함께 배우는 풍습 때문에 한동안 삼론학의 이제설이 바르게 이해되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양의 삼대법사라고 불리는 지장, 법운, 승민의 약리이제설(約理二諦說)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 요동 출신의 승랑이 금릉 북동쪽의 섭산에 들어와 가르침을 펴면서 이제에 대한 오해는 바로잡히게 된다. 승랑이 금릉 불교계에 소개한 이제설을 약교이제설(約敎二諦說)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일본의 사토테츠에이(佐藤哲英)는 『三論學派における約敎二諦說の系譜』라는 논문을 통해서 신삼론의 약교이제설이 승랑 이전의 광주 대량법사에게 그 기원을 갖는다고 주장하였고, 『中國般若思想史』의 저자 히라이슌에이(平井俊榮) 역시 이런 주장에 적극 동조한 바 있다. 그러나 사토테츠에이가 논거로 삼았던 문장들을 면밀하게 다시 해독해 보면 신삼론 전통에서 광주 대량의 이제설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대해 비판적이었음을 알게 된다.
요컨대 양의 삼대법사의 이제설은 `유소득(有所得)의 약리이제설`이고, 광주 대량법사의 이제설은 `유소득의 약교이제설`인 반면에, 승랑에게서 기원하는 신삼론의 이제설은 `무소득(無所得)의 약교이제설`이라고 정리 된다. 양의 삼대법사와 광주대량 모두 유소득의 이제관을 견지하긴 했지만 그 맥락은 다르다. 양의 삼대법의 이제설의 경우 속제인 `유(有)`와 진제인 `무(無)` 각각을 별개의 이법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유소득의 이론이었지만, 광주 대량법사의 이제설의 경우 `교법(敎法)`인 이제와 `이법(理法)`인 중도를 구분한다는 점에서 유소득의 이론이었다. 그러나 신삼론의 이제설은 `유`와 `무`, `교법`과 `이법` 모두에 대해 고착하지 않는 진정한 무소득의 이론이었다. 또 신삼론 전통에서는 `교법`인 이제가 `이법`인 중도를 구현하는 궁극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본 반면, 광주 대량은 그럴 수 없다고 본 점에서 양측의 이제관은 차별된다. 신삼론 전통에서 `삼중(三重)이제설[또는 사중(四重)이제설]`이 창출된 것도 신삼론의 약교이제설이 무소득의 정신에 철저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Although Kumarajiva introduced Madhyamaka scriptures into China, the real meaning of Er-di(二諦) have been misinterpreted by most of Chinese monks for a long time. The most representative figures who understood wrongly on Er-di were 3 monks of Liang (梁) Dynasty. They thought Er-di to be a kind of object(境) or logos(理). But a Korean monk Seung-rang(僧朗) from Liao-dong(遼東) corrected their view on Er-di. Seung-rang taught that Er-di is only a way of teaching.
In 1966, Japanese scholar Sato(佐藤) presented a paper with revolutionary opinion that the new theory on Er-di of New San-lun tradition was originated not from Seung-rang but from Dai-liang(大亮) of Guang-zhou(廣州).
I read carefully and interpreted again the phrases of San-lun treatises that have been used as foundations of Sato`s opinion. I found that there are so many misinterpretations in Sato`s paper. Of course it is true that Dai-liang insisted on Er-di to be a kind of teaching. But in Si-lun-xuan-yi(四論玄義) of Hui-jun(慧均), the theory of Dai-liang is classified as an Obsessive one(有所得) like those of 3 monks of Liang Dynasty. Dai-liang discriminated between the teaching(敎) of Er-di and the logos(理) of Zhong-dao(中道). Moreover Dai-liang didn`t regard Er-di as the cause of realizing Zhong-dao.
The monks of New San-lun tradition showed Non-obsessive(無所得) attitudes on Er-di. And they thought Er-di as the cause of realizing Zhong-dao. These attitudes and thoughts were reflected on their understanding of Er-di. So they could design the dialectical theory of 3 or 4 levels of Er-di.
目次Ⅰ. 신삼론의 약교이제설-무엇이 문제인가? 43
1. 삼론학의 전파와 약리이제설 43
2. 신삼론 약교이제설과 그 기원에 대한 논란 47
Ⅱ. 신삼론 약교이제설의 대량 기원설에 대한 비판적 검토 50
1. 『대승현론』 중의 ‘今不同此等諸師’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50
2. 대량의 ‘지월(指月) 비유’는 섭령흥황 전통에 그대로 수용되었나? 53
3. 대량은 ‘이제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57
4. 대량의 약교이제설은 유소득(有所得)의 교견(敎見)이다. 59
Ⅲ. 신삼론 약교이제설의 특징과 전개 65
ISSN12250945 (P)
ヒット数93
作成日2021.12.08
更新日期20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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