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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 선승들의 정토사상 -- 大慧宗杲를 중심으로=The Jeongto(淨土, Pure Land) Thought of Zen Monks(禪僧) in the Song Dynasty -- Focusing on Dahui Zonggao(大慧宗杲)
著者 정영식 (著)=Jeong, Young-sik (au.)
掲載誌 선학=禪學=Journal of Seon Studies
巻号v.49 n.0
出版年月日2018.04.30
ページ5 - 37
出版者韓國禪學會
出版サイト http://www.seonstudy.org/seon/
出版地Korea [韓國]
資料の種類期刊論文=Journal Article
言語韓文=Korean
ノート저자정보: 고려대장경연구소 연구원
キーワード선정쌍수=the Buddhist memorial service; 대혜종고=Dahui Zonggao; 정토사상=pure land thoughts; 지옥=the hell; 서방정토=western pure land
抄録송대의 선승들 가운데는 정토왕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禪苑淸規』를 보면 선 승이 병이 들어 延壽堂에서 요양할 때나, 사망하여 장례식을 행할 때도 사망한 선승 이 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송대에는 선승이라도 염 불을 하고, 정토왕생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토관은 선승에 따라서 여러 가지였다고 생각된다. 먼저 長蘆宗賾(생몰연대 미상)은 蓮華勝會라 는 염불결사를 조직하였으며, 어머니로 하여금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추구하게 하였 다. 나아가 본인도 서방정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에 반해 眞歇淸了(1089~1151) 는 유심정토의 경향이 강하였는데, 재가신자를 대상으로 설법할 때는 때때로 정토왕 생을 권하기도 하였다. 간화선승의 예를 보면, 圜悟克勤(1063~1125)은 철저히 선승으 로서의 자세를 견지하였으므로 오직 유심정토만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의 제자인 大慧宗杲(1089~1163)는 지옥에 대해서 자주 설하였고, 재가신자를 위한 추선의례에서 는 정토왕생을 설하기도 있었다. 대혜가 정토왕생을 설하는 것은 주로 유배에서 돌아 온 1156년(68세) 이후였다. 이와 같이 대혜가 지옥에 대해 자주 설하고 재가신자들로 하여금 정토왕생을 추구하게 한 것은 이전의 다른 간화선승과 다른 특징이다. 하지만 이것은 재가신자들을 위해서 방편적으로 설한 것이며, 대혜 자신은 선승으로서 유심 정토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나아가 염불을 닦은 적도 없었다.

There were many people who pursued Jeongto(Pure Land) Wangsaeng(passing to the next world) among Zen monks in the Song Dynasty. According to the Seon Center Golden Rules(禪苑淸規), when Zen monks were sick and treated in the Yeonsudang(延壽堂, hospital ward) or died and funerals were performed, people prayed the dead Zen monks were passed to the Pure Land generally. Thus, it has been generally accepted that even Zen monks prayed to the Buddha and pursue Jeongto Wangsaeng in the Song Dynasty. However, it was thought that there were many ideas of the pure land according to Zen monks. First, Changlu Zongze(長蘆宗賾, the birth and death date unknown) organized a Buddha chanting association called yeonhwaseunghoe(蓮華勝會) and let his mother to pursue Jeongto Wangsaeng through Buddha chanting. He also accepted the Pure Land of the West eagerly. In contrast, Zhenxie Qingliao(眞歇淸了, 1089~ 1151) was a proponent of Yusim(唯心, Mind-only) Jeongto. However, he also preached Jeongto Wangsaeng to lay Buddhists sometimes. One of the monks of Ganhwaseon, Yuanwu Keqin(圜悟克勤, 1063~ 1125) adhered to the fundamental stance as a Zen monk thoroughly so he only preached Yusim Jeongto. However, one of his disciples Dahui Zonggao(大慧宗杲, 1089 ~1163) preached the hell often and even preached Jeongto Wangsaeng in the Buddhist memorial service(追善儀禮) to lay Buddhists. The preach of Jeongto Wangsaeng by Dahui started after the year of 1,156 (when he was 68 year’s old) when he returned from the exile. The frequent preach of the hell and letting lay Buddhists to pursue Jeongto Wangsaeng by Dahui were different characteristics from other previous monks of Ganhwaseon. However, this preach was only a temporary expedient for lay Buddhists while Dahui himself was adhered to the standpoint of Yusim Jeongto as a Zen monk. Furthermore, he had never practiced Buddha’s chanting.

目次국문 초록 5
Ⅰ. 서론 6
Ⅱ. 남송대의 선과 정토 7
1. 『선원청규(禪苑淸規)』와 정토 7
2. 남송대 선승의 정토사상 10
3. 간화선승의 정토사상-원오극근(圜悟克勤) 19
4. 대혜종고의 정토사상 24
Ⅲ. 결론 33
참고문헌 35
Abstract 36
ISSN15980588 (P)
DOI10.22253/JSS.2018.4.49.5
ヒット数88
作成日2022.06.03
更新日期20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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