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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慧宗杲における華厳と禅 -- 雪峰教団における華厳思想の受容とその宋代禅への影響=Huayan and Chan in Dahui Zonggao (大慧宗杲) -- The Embracing of Huayan Thought in the Xuefeng (雪峰) School and its Influence on Chan in the Song Dynas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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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 |
土屋太祐 =Tsuchiya, Tais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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掲載誌 |
불교학보=佛教學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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巻号 | v.73 n.0 |
出版年月日 | 2015.12 |
ページ | 33 - 61 |
出版者 |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Institute for Buddhist Culture |
出版サイト |
https://abc.dongguk.edu/kb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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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地 | Korea [韓國] |
資料の種類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言語 | 日文=Japanese |
ノート | 著者所属:新潟大敎授 |
キーワード | 당말오대=the late Tang and the Five Dynasties period=唐末五代; 송대=Song dynasty; 대혜종고=Huayan and Chan in Dahui Zonggao=大慧宗杲; 운문종; 간화선; 무사선=“no-practice Chan=無事禪; 화엄사상=Huayan thought; Yunmen School; kan huatou |
抄録 | 대혜의 여러 저작에는 화엄경혹은 화엄교학의 문헌으로부터의 인용이 자주 보이지만, 통일적인 의도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당말 오대(唐末五代)의 선과 화엄의 접촉, 그로부터 송대에 이어지는 선의 사상사적 문맥 속에서 대혜 사상의 의의를 논하고자 한다. 당말오대 복건(福建)에서 성립한 설봉(雪峰) 교단의 제2대에 이르러 화엄사상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선의 여러 종파 가운데 일반적으로 화엄과 관련이 깊다고 하는 것이 법안종(法眼宗)인데, 화엄사상의 영향은 법안문익(法眼文益)의 스승인 설봉의존(雪峰義存)의 법사(法嗣)였던 현사 사비(玄沙師備)의 사상에 이미 나타난다. 현사(玄沙)의 사상을 대표하는 이론으로서는 삼구강종(三句綱宗)이 알려져 있다. 이것은 제1구부터 제3구까지 서서히 경지가 깊어지는 구조이지만, 그 최종적 입장을 보여 주는 제3구에 화엄적 어휘가 자주 보인다. 한편, 제1구는 입문의 방편이고, 뒤의 단계로 초극되며, 그 내용은 마조계(馬祖系)의 ‘작용즉성(作用即性)’설과 설봉의존의 사상에 반영되어 있다. 즉 이것들은 현사가 초극하고자 했던 비판대상이라고 생각된다. 운봉교단은 당시 선문에서 행해졌던 ‘작용즉성’설에 대한 비판을 알고 있었고, 운봉의 사상이 마조와 같은 입장에 서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또한 운봉계의 선자들은 ‘작용즉성’을 초월하는 접화(接化) 수단을 창출해내지는 못했던 것 같으며, 그 때문에 현사는 양자를 동시에 비판했다고 보인다. 양자는 함께 자기의 정신작용을 불성 인식의 단서로 한다. 현사는 불성을 개인 존재 안으로 국한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기존의 이해에 대해 비판하였다. 한편, 개인의 틀을 넘어 세계에 충분한 불법을 인식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사의 동문이었던 운문문언(雲門文偃)도 설봉선을 초극하려고 했다. 운문은 자기의 불성과 세계가 일치한다는 설봉적 테제로부터 불성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고, ‘개물이 개물로서 원만히 성립한다’는 세계관을 제창했다. 이러한 사상은 사사무애적 관점으로부터 수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상은 선적인 존재론, 또는 심성론으로서 송대에 거의 그대로 계승되어 송대 선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송대선은 이러한 것을 사상 영역에 두고만 있었고 새로운 관점을 거의 내놓지 못하였다. 그러나 송대에는 당대(唐代)와는 전혀 다른 맥락과 과제로 사상이 전개한다. 우선, 법안종 사상은 ‘삼계유심(三界唯心)’ 도리를 설하는 이론적인 사상으로 보게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송대의 선승은 보다 자유롭고, 의미를 한정하기 어려운 선적인 언어에 의한 사상표현을 구하게 되었다. 이것이 대혜의 간화선에 이어진다. 또한 운문의 ‘산은 산, 물은 물(山是山, 水是水)’라는 말은 ‘무사선(無事禪)’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대혜의 비판은 그 가장 전형적인 예인데 거기에서 대혜가 비판한 것은 ‘깨달음[悟]’의 결여였다. 이러한 관점은 송대 선자의 당대(唐代)의 ‘무증무수(無證無修)’의 사상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타났으며, 대혜는 송대적인 문맥에 서서 운문의 사상을 비판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혜는 화엄사상에 대해서는 특별한 대항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무사선’이나 이지(理知)적 이해에 반대하는 태도는 송대선의 문맥에 의해서 요청된 것이다.
While excerpts from Avatamsaka Sutra, and other literature from Huayan teachings, can frequently be found in the works of Dahui, it is difficult to construe and consolidate their overarching meanings. This paper aims to discuss the significance of Dahui's religious philosophy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Chan Buddhism, in its development from the late Tang and the Five Dynasties period (唐末五代), when Huayan first came in contact with Chan, leading up to the Song dynasty. Despite the fact that, among the various branches of Chan Buddhism, the Fayan School (法眼宗) is commonly associated with Huayan, the influence of Huayan thought is apparent in the earlier doctrine of Xuansha Shibei (玄沙師備), the dharma heir of Xuefeng Yicun (雪峰義存), the mentor of Fayan Wenyi (法眼文益). The Theory of the Three Phrases (三句綱宗) is widely seen as representative of Xuansha’s philosophy. Considering that the theory gradually builds insight as it progresses from the first phrase, it is noteworthy that Huayanesque vocabulary is frequently seen in the third phrase, which serves as an illustration of his final thoughts. On the other hand, the first phrase acts as an introduction transitioning into his main ideas that reflect both Xuefeng Yicun's philosophy and Mazu Daoyi's notion of “function and activities being the nature” (作用即性) . However, these concepts are thought to be the objects of criticism that Xuansha tried to surpass. In the Yunfeng and Mazu school of thought, one's own state of mind is regarded as the key to enlightenment. Xuansha interpreted and criticized this original concept as restricting enlightenment within one's self and maintained that the Buddha Principle needs to be applied beyond the boundaries of self and onto one’s surroundings. Yunmen Wenyan (雲門文偃), who learned from the same school of Chan Buddhism as Xuansha, also tried to overcome this limitation in Xuefeng style of Chan. Abandoning the obsession with the characteristic Buddhist Principle in Xuefeng's claim that the Buddhist Principle in one’s self corresponds to the world, he advocated a view in which objects and entities were perceived to be inherently whole and independent. Such a way of thinking— including Chan existentialism and the theory of mentality—seems to have developed from the Huayan concept of interrelation, and was passed on to later generations to become the foundation |
目次 | 〈한글요약〉34 Ⅰ. はじめに 36 Ⅱ. 雪峰下における華厳思想の受容 36 Ⅲ. 宋代における展開 51 Ⅳ. 結語 57 参考文献 58 〈Abstract〉60 |
ISSN | 12261386 (P) |
DOI | 10.18587/bh.2015.12.73.33 |
ヒット数 | 299 |
作成日 | 2022.09.11 |
更新日期 | 2022.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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