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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총림 송광사의 수행과 문화 - 수행 전통과 문화 지형을 중심으로=A Study on the Training and Culture of Jogye Vindyavana Hall Songgwangsa -Focusing on the training tradition and cultural topogra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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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 |
고영섭 (著)=Ko, Young-seop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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掲載誌 |
보조사상=普照思想=Journal of Bojo Jinul's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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巻号 | v.39 n.0 |
出版年月日 | 2013 |
ページ | 55 - 109 |
出版者 | 普照思想研究院 |
出版地 | Korea [韓國] |
資料の種類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言語 | 韓文=Korean |
ノート | 저자정보: 동국대 서울캠 불교학과 교수 |
キーワード | 조계총림=Jogye Vindyavana Hall; 삼보종찰; 승보종찰; 길상사=Gilsangsa; 정혜사=Jeonghyesa; 수선사=Suseonsa; 송광사=Songgwangsa; 목우가풍=Moku tradition; 부휴가풍=Buhyu tradition; 효봉가풍=Hyobong tradition; 구산가풍=Gusan tradition; 3 main temples; the temple producing the great priest |
抄録 | 이 논문은 조계총림 송광사의 수행 전통과 문화 지형을 살펴본 글이다. 조계총림 송광사(松廣寺)는 불교 조계종의 팔대총림(八大叢林) 중 조계총림의 본산이자 삼보사찰 중 승보종찰(僧寶宗刹)로 알려져 있다. 송광사의 원 절터였던 길상사(吉祥寺)는 신라 말 혜린(慧璘) 대사가 초창한 절이었다. 하지만 길상사는 후백제 전쟁을 치르면서 폐사된 뒤 다시 복원되지 않았다. 고려 인조 때 석조(釋照) 대사에 의해 중창이 진행되다가 선사의 갑작스런 입적으로 인해 완수되지 않았다. 그 뒤 거조사(居祖寺)에서 활동하던 지눌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혜균습(定慧均習)의 살림살이를 제창하고 선교일원(禪敎一元)의 사고방식을 창안하면서 고려 불교계의 지형은 변모하기 시작했다. 송광사는 고려 지눌(知訥)선사를 필두로 하여 16국사와 나옹(懶翁)과 무학(無學) 왕사를 배출하였다. 이들 국사와 왕사는 이곳에 머물며 국사와 왕사로 책봉되었으므로 송광사의 인물로 집계할 수 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부휴계(浮休系) 문도들이 주로 이곳에 머무르며 송광사의 임제 법통(臨濟法統)을 주도하고 승풍(僧風) 진작에 힘썼다. 대한시대에도 고승 대덕들이 이곳에 머물렀으며 가야총림의 초대방장이었던 효봉 학눌(曉峰學訥)의 송광사 주석(1937~1946)을 필두로 하여 조계총림의 1·2대 방장인 구산 수련(九山秀蓮), 제3·4대 방장인 회광 일각(廻光壹覺) 및 제5대 방장인 범일 보성(梵日菩成)이 주석하면서 총림과 사찰의 가풍을 드높였다. 조계총림 송광사는 보조 지눌(普照知訥)이라는 빼어난 수행자의 수행과 사상을 ‘보편적인 인류의 사상’으로 펴고자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울림을 지니고 있다. 지눌은 신라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분황 원효(芬皇元曉)와 함께 한국의 대표하는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2세기에 그가 지녔던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조계총림 송광사의 대사회적 기반과 소통의 기제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송광사는 보조 지눌의 정혜결사에서 제시한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 및 『진심직설』(眞心直說) 등에 담긴 뛰어난 사상”을 철학적 배경이자 사상적 근거로 삼고 있다. 때문에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보조 지눌의 선법을 확산하고 학술 연찬을 공고히 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더 요청되는 것이다. 조계총림은 고려 보조 지눌국사의 수선사와 이후 16국사를 배출한 조사전을 중심으로 한 여러 전각들이 승보종찰의 가풍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찍이 구산 수련은 송광사 국제선원을 만들어 눈 푸른 납자들을 맞이하여 한국 간화선을 세계화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또 서울에 송광사 분원(法蓮寺)을 만들어 학술과 출판 및 장학재단과 갤러리를 운영함으로써 현대판 사찰운영의 전형을 제시해 왔다. 여기에다 성북동 길상사를 조계총림에 품음으로써 불교 뿐만 아니라 이웃 종교와의 대화와 소통의 무대까지 마련하였다. 전통 문화를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안하려는 다양한 노력은 목우자 지눌의 가풍을 잇고자 했던 효봉 학눌과 그의 전법제자인 구산 수련과 불일 법정의 노력에 힘입은 결과로 보인다. 조계총림과 삼보종찰의 가풍과 문화의 특징은 한 마디로 ‘올바른 수행자상의 제시’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지눌 등의 16국사와 나옹-무학 등의 2왕사 및 효봉 학눌-구산 수련 등으로 이어지는 수선문화를 극대화하는 장치가 요청된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련문화 시스템의 구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가는 템플스테이의 활성화와 사찰 음식의 대중화는 조계총림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시대 현대인들이 요청하고 있는 치유와 소통을 위한 ‘참선수행 캠프’ 혹은 ‘단기출가 캠프’ 또는 ‘전통문화 캠프’ 등을 운영하여 새로운 가풍과 문화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송광사가 일찍부터 문서포교에서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었고 문화지형의 형성에 뛰어난 시각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대중적인 지명도를 지닌 불일 법정과 그를 잇는 일초(一超, 高銀/泰), 석지현(釋智賢), 돈연(頓然), 보원(普願), 지원(智原) 등 일련의 문인 가풍을 지닌 승려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조계총림은 『불일회보』를 통해 사회 각층의 전문가들과 소통하였고 보조사상연구원을 통해 목우(牧牛)가풍과 부휴(浮休)가풍 및 효봉(曉峰)가풍과 구산(九山)가풍의 확산과 학술 연찬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우리 사회에 조계총림 송광사라는 존재감을 분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송광사는 구산 수련, 회광 승찬, 불일 법정(佛日法頂) 등의 입적 이후 상대적으로 그 존재감이 미약해진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들을 잇는 후속 인물들의 교단 내 존재감과 대중적 지명도가 조계총림 송광사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계총림 내외에서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고 그들을 집중 지원하는 시스템의 확보와 대사회적 소통의 기반을 회복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research the training tradition and cultural topography of Jogye Vindyavana Hall Songgwangsa. Jogye Vindyavana Hall Songgwangsa is known as the head temple of Jogye Vindyavana Hall among 8 Vinaya Halls and the temple producing the great priest among 3 main temples. Gilsangsa, which was the origin temple site of Songgwangsa, was the temple founded by Priest Hyerin(慧璘) in the end of Sinra Age. However, Gilsangsa was not recovered again after it was destroyed during Post Baekje War. Although its reconstruction was proposed by Priest Seokjo(釋照) in the reign of King Injo(仁祖) of Goryeo Dynasty, it was not completed because of the sudden death of the priest. After that, as Jinul(知訥), who acted in Geojosa(普濟寺), moved here, advocated the life of balance practice of Meditation and Wisdom(定慧均習) and created the way of thinking of unitary of Seon and Kyo(禪敎一元), the topology of Joseon Buddhism began changing. Songgwangsa has produced Priest Jinul, 16 national priests and royal priests such as Naong and Muhak. These national priests and royal priests stayed in Songgwangsa until they were appointed for their duties. Therefore, they belong to the people of Songgwangsa. Since the middle of Joseon Dynasty, apprentice of Buhyoo lineage(浮休系 門徒) stayed here, leading dharma lineage of Imje(臨濟 法統) of Songgwangsa and trying to improve the temple tradition. In the age of Daehan Empire, high priests stayed here. The first chief priest of Gaya Vindyavana Hall, Hyobong Haknul (premier of Songgwangsa: 1937~1946), the 1st and 2nd chief priest of J |
目次 | 1. 문제와 구상 60
2. 吉祥寺와 定慧社의 수행 64
3. 修禪社와 松廣寺의 전통 70
4. 牧牛가풍과 浮休가풍의 문화 89 5. 曉峰가풍과 九山가풍의 지형 92 6. 정리와 맺음 103 |
ISSN | 12297968 (P) |
DOI | http://doi.org/10.22859/bojoss.2013..39.002 |
ヒット数 | 109 |
作成日 | 2023.01.30 |
更新日期 | 2023.0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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