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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과 월지족 간 문화·종교적 근친성 - 가야사를 중심으로=Cultural Affinity between Ancient Korea and Yuezhi: Focusing on the History of Gay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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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 |
한대성 (著)=Han, Dai-sung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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掲載誌 |
동아시아불교문화=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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巻号 | v.51 n.0 백용성스님과 한국불교의 청소년 포교 문제 |
出版年月日 | 2022.06 |
ページ | 33 - 67 |
出版者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The Association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
出版サイト |
http://www.easternasi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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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地 | Busan, Korea [釜山, 韓國] |
資料の種類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言語 | 韓文=Korean |
ノート | 저자정보: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
キーワード | 가야=Gaya; 수리야=Sūrya,; 김수로=Kim su-ro; 허황옥; 아미타불=Amitābha; 쿠샨; 월지=Yuezhi; Mahāyāna Buddhism; Heo hwang-ok; Kuṣāṇa |
抄録 | 한국의 고대사서에는 기원초 서역 아유타에서 한 공주가 배를 타고 와 가야의 왕과 결혼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서역 공주가 바지를 입고 온 유목민인점과 한국의 일부 자료에서 그들이 월지국에서 왔다고 기록한 점은, 그들의 본거지가 월지국이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 서역 공주가 한국에 실제로 도래해서 가야의 왕과 결혼했다면, 그 사건 이전에 양국 간 왕성한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본 논고에서는 한국과 인도, 특히 그중에서 월지족 간 교류의 흔적을 고고학적인 유물을 중심으로 양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와 문화에서 찾아보려 시도하였다. 가야의 창건자 수로왕은 그 이름뿐만 아니라 수레의 마부라는 특성이 인도의 수리야신과 동일하다. 그 관계성은 가야와 당시 월지족의 영토였던 틸리야 테페 고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태양종문과 그 시기에 속하는 거의 완벽하게 동일한 무늬의 동경 등의 유물에 의해 실증된다. 그러한 고대 한국과 인도의 특수한 관계성은 바자석굴 부조와 일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달토끼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왕국인 ‘가야’는 인도에도 지역명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의미론적으로 그리고 종교학적으로 ‘검은 소머리의 신’으로 해석됐다. 검은 소머리의 신은 고구려 고분에 나타난 벽화를 바탕으로 불의 신으로 추론됐다. 쿠샨 제국의 카니슈카와 후비슈카왕의 금전과 사리장엄구에 새겨진 미트라 혹은 아미타불은 태양신의 속성을 가지는데, 이 신은 불교가 유입되기 전 고대 한국에서도 광범위하게 숭배됐음을 석굴암의 구조와 계획도시인 경주의 도시구조 등을 통해 확인하였다. 양국에 나타나는 이러한 다수의 공통적인 특성은 단순히 고대 사회가 가지는 보편적 유사성 때문이 아니라 고대에 실크로드 등을 통한 왕성한 문화적 교류의 산물로 추론된다. 이렇게 한국과 인도 혹은 가야와 월지족 간에 나타나는 종교와 문화 고고학적 공통성은 서역공주 도래설의 역사성을 뒷받침한다.
There are multiple ancient Korean chronicles that give an account of a princess of ancient India has come to Korea by a ship and married to a Korean king in the middle of the first century CE. The event of the advent of the Indian princess in Korea to be historical, a scale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the two countries has to be presupposed. This article attempts to trace the presumed cultural exchange, focusing primarily on common religiosity and archaeological remains. The founder of the Gaya kingdom, King Suro, has not only the same name with an Indian god Sūrya, but also in their role as a solar charioteer. This relation is substantiated with multiple archaeological remains such as an identical solar emblem and a design of brass mirrors found in the two countries. Likewise, the solar deities engraved on and sculptured on Kanishka’s casket along with on coins of Kushan are perceived as a wide spread of the worship in ancient India, and the solar worship appears even systematically practiced in a great scale in ancient Korea as is observable in the iconography and layout of Sukgul grotto as well as the layout of the ancient capital city of Korea, Gyoungju. At last, the name of the Korean kingdom, “Gaya” is also seen as a result of a common culture for India too has a country with the same name. But the name is seen as a name of an ancient deity which is ascribed to a pre-Buddhist character, and it is analyzed as a cow-headed black fire deity based on the Korean meanings of the word and a mural painting. |
目次 | Ⅰ. 서론 36
Ⅱ. 수로왕과 틸리야 테페 유물에 나타나는 유사성 40
Ⅲ. 고대 한국과 월지족의 태양신 숭배 50
Ⅳ. 국명 ‘가야’의 고대 종교사적 의미 55
Ⅴ. 결론 60 |
ISSN | 27140938 (P); 27140946 (E) |
DOI | 10.21718/EABC.2022.51.02 |
ヒット数 | 91 |
作成日 | 2023.06.15 |
更新日期 | 2023.0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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