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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지관(瑜伽止觀)에 나타난 의미artha, 義에 대한 고찰 -- 『해심밀경(解深密經)』「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을 중심으로=The Meaning of Artha (義) in śamatha-vipaśyanā of Yogācāra
著者 백진순 (著)=Baek, Jin-soon (au.)
掲載誌 불교학연구=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巻号v.49
出版年月日2016.12
ページ311 - 333
出版者불교학연구회=佛教學研究會
出版サイト http://www.kabs.re.kr/
出版地Daegu, South Korea [大邱, 韓國]
資料の種類期刊論文=Journal Article
言語韓文=Korean
キーワード유가지관=瑜伽止觀=śamatha-vipaśyanā of Yogācāra; 법=dharma=法; 의미=artha=義=meaning or artha; 말의 의미=語義=the meaning of word; 알아야할 의미=所知義=the image of object appeared as the meaning of word; 삼마지영상=三摩地影像=the image in Samādhi; 유식=唯識=Mind-Only
抄録이 글에서는 『해심밀경(解深密經)』의 유가지관(瑜伽止觀)을 통해 일체법을 ‘말의 의미[語義]’로 다루었던 유가행파의 주요한 전통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유가지관의 주요 내용은, 교법(敎法)에 대해 사색하는 것이고, 그것은 크게 법(dharma, 法)과 의미[artha, 義]에 대한 사색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법과 의미의 구분은 말과 의미의 구분과 같다. 이 중에 ‘법(=말)’의 본성에 대한 사색은 이미 초기 불교에서부터 정립된 언어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의미’의 본성에 대한 사색은 기존의 관점을 계승하면서도 그것과는 획기적으로 갈라지는 새로운 관점이 제시된다.
유가행파는 하나의 말에 의해 드러나는 것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에 현현된 그 대상의 영상(影像)이라는 초기 불교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런데 유가지관에서는, 교법에 의지해서 현현해낸 삼마지영상(三摩地影像)이 바로 ‘알아야할 의미[所知義]’에 해당한다. 이 경에서는 삼마지의 마음에서 교법의 의미로 현현되는 삼마지영상뿐만 아니라, 일상적 마음(=산란된 마음)에서 말의 의미로 현현하는 대상의 영상도 본질적으로 모두 ‘마음이 현현해낸 것’이라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유식(唯識)’의 교의이다.
이 유식의 교의가 말의 의미에 대한 진술로서 간주될 때, 그것은 이 세계가 그대로 ‘말의 의미’로서 실재한다고 전제하는 학설들에 대한 강력한 반론의 성격을 띠게 된다. 유가행파는 세속의 언어적 관행에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말의 의미를 실체화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이 모든 실재론적 집착의 기점이 된다고 보았다. 유식의 교의는 바로 하나의 말과 그 의미는 우리가 집착할 만한 견고한 실재가 아님을 일깨워준다. 따라서 이 교의를 따르는 유가행자들은, 유가지관 안에서 한편으로는 말 자체와 의미의 세계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체적 지식을 추구해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말과 의미를 실체화하는 모든 종류의 집착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가는 것이다.

The significance of śamatha-vipaśyanā of Yogācāra is that it has strong arguments against theories based on ‘this world exists just as the meaning of word’. The śamatha-vipaśyanā of Yogācāra is to think of Doctrine (敎法), in detail, the contemplation of Dharma (法) and Artha (義). Here, Dharma is to Artha as word is to meaning.
At first, the essence (體) of Doctrine (敎法), which Buddha preached, was about the specific phoneme features from his sound, that is, Nāman or Name (名), Pada or Phrase (句), and Vyañjana or Phoneme (文). So, to know the dharma means to exactly understand what distinctive functions Nāman, Pada, and Vyañjana have in the process of showing A meaning.
In the second place, the contemplation into the nature of ‘Artha’ suggests a new prospective, which gives an innovative way and also accedes the view of the early Buddhism. The Yogācāra School accepts the viewpoint of early Buddhism that the thing represented by A word is the image (影像) of the object that appears in the mind, not the object itself. Therefore, to know the meaning of a word (語義) is to know about the image of the object appearing as the meaning of word.
However, the Yogācāra School insisted that ‘the image of the object appearing as the meaning of word’ did not come from the outside of the world, but ‘the Mind-Only (唯識)’. Since then, the thought of this school was separated from the previous ones. According to the Yogācāra School, it is not only likely to contemplate ‘the image in Samādhi (三摩地影像)’ appearing as the meaning of doctrine, but also understand the image of the object appearing as the meaning of a word in our daily minds (=distracted minds). Both cases are not basically different. This is the doctrine of ‘the Mind-Only (唯識)’.
目次Ⅰ. 들어가는 말 312
Ⅱ. 이언법성(離言法性)과 철학적 사색 314
Ⅲ. 법(法)을 아는 것과 의미[義]를 아는 것 317
Ⅳ. 유가지관에 나타난 의미의 의미 321
Ⅴ. 맺는 말 328
ISSN15980642 (P)
ヒット数122
作成日2021.06.22
更新日期20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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