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鏡虛 惺牛의 佛事와 結社 -- 역사의 안팎과 철학의 앞뒤=Kyun-heo Sung-woo's Buddha-work and Association -- Inside and Outside of History and Front and Rear of Philoso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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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 |
고영섭 (著)=Ko, Young-seop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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掲載誌 |
한국불교학=韓國佛教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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巻号 | v.51 n.0 |
出版年月日 | 2008.08 |
ページ | 61 - 102 |
出版者 | 한국불교학회 |
出版サイト |
http://ikab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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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地 | Korea [韓國] |
資料の種類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言語 | 韓文=Korean |
ノート | 저자정보: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
キーワード | 살림살이; 사고방식=way of thinking; 수선결사; 미타사상=the thought of Amita Buddha; 미륵사상=the thought of Maitreya; 무착=Mu-chak; 세친=Sae-chin; 현장=Hyun-jang; 하품중생; life style; Seon Practice association; vulgar mankind |
抄録 | 경허 성우(1846~1912)는 선사였지만 교학에도 밝았다. 그는 선과 교를 엄밀히 구분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그의 언어관은 글의 면면에 배어 있다. 경허는 ‘외마디 말’이라고 하더라도 ‘성불하는 길머리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일러주’고 있으므로 외마디 말을 소홀히 하지 말고 ‘간절히 읽기를 권하고’ 있다. 경허 당시 불교계는 아직까지 한문불교 중심으로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때문에 각종 의식문이나 법문들이 대중들에게 소통되기가 어려웠다. 여타의 참선곡과 달리 경허의 「참선곡」은 선종의 선기(禪機)를 쉽고 명료한 언어로 보여주고 있다. 경허의 「법문곡」은 그의 순한글 법어인 「중노릇 하는 법」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의 법문이 순한글의 가사형식으로 전해져 남아있다는 것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미 선의 대중화를 위해 조선 영ㆍ정조 시대에 지영의 「참선곡」도 지어졌다. 하지만 국한문 혼용체로 된 「참선곡」, 「가가가음」, 「금강산유산가」에서 보이는 것처럼 불교의 외연을 넓힌 한글 불사는 아무래도 경허가 본격적으로 물꼬를 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참선곡」은 이후 학명의 「참선곡」, 만공의 「참선곡」, 한암의 「참선곡」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경허는 선진적으로 각성된 지식인으로서 당대 현실보다 앞서 한문-국한문혼용-한글로 된 법어와 가사와 노래 등을 창작한 문인이었으며 시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경허의 결사는 지눌의 정혜결사를 계승하면서도 선종의 결사에 미륵정토의 사상을 결합하였다. 두 결사의 유사성은 ‘동맹’을 통해 공동이념과 공동생활을 염두에 둔 측면에서 확인된다. 물론 선법의 대중화와 일상화를 도모한다는 점에 서도 선종 결사와 미륵정토 사상은 상통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종래의 결사와 변별되는 독자적인 것이며 경허의 실천관에 기초한 탄탄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허는 ‘견해가 같고’ ‘행동을 같이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승속’(僧俗), ‘남녀’(男女), ‘노소’(老小), ‘현우’(賢愚), ‘귀천’(貴賤)을 묻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친소’(親疎), ‘이합’(離合), ‘원근’(遠近), ‘선후’(先後)를 묻지 말고 다 동참하기를 허락하고 있다. 이것은 경허 수선결사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경허는 선종의 정혜결사에 미타사상이 아니라 미륵사상을 덧붙임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성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한 노력하였다. 하지만 계사문 제4조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경허의 최종적인 지향은 정혜(定慧)를 닦는 것에 두고 있다. 이것은 선사로서의 그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결사를 통해 그가 꾀하고자 했던 것은 불교 본령의 회복이며 그것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리하여 경허는 불교의 전관적 이해 위에서 이러한 역사의 안팎을 넘나들며 독자적 언어를 보여줄 수 있었고 철학의 앞뒤를 오고가며 주체적 실천을 확보할 수 있었다.
Gyung-heo Sung-woo(1846~1912) was a Seon master but he was well acquainted with 교학. He did not try to strictly distinguish Seon(禪) and Gyo(敎). His linguistic views like this are thoroughly internalized within his writings. Gyung-heo recommends, because even ‘one single word’ ‘surely and clearly informs the way of attaining Buddhahood’, not to neglect a single word but to ‘sincerely read it’. In the contemporary period, the Buddhist community was still holding Buddhist ceremonies centered on Buddhism of Chinese writing. Thus, it was hard for the masses to understand an account of ceremony(儀式文) or Buddhism of all sorts. However, different from any other Seon-Buddhist meditation songs, Gyung-heo's Seon-Buddhist meditation song shows the Seon school's a basis of seon(禪機) in easy and plain words. Gyung-heo’s “song of Buddhism” is the on the extension of his purely Korean Buddhist sermon “How To Live As a Monk”. The fact that the contemporary Buddhism came down in the form of purely Korean words of a song is suggestive in many ways. In the period of Young-jo and Jung-jo of the Joseon Dynasty, Ji-young’s “Seon-Buddhist Meditation Song”(參禪曲) was already written for the popularization of Seon. But, as “Seon-Buddhist Meditation Song”, “Gagagaeum”, and “song of a travel at Geumgangsan”(金剛山遊山歌) that were written in both Korean and Chinese characters show, it will be necessary for us to view Gyung-heo as the one who started the Hangeul Buddhist service that widened the extension of Buddhism. It seems that his “Seon-Buddhist Meditation Song” greatly influenced Hak-myung’s “Seon-Buddhist Meditation Song”, Man-gong’s “Seon-Buddhist Meditation Song”, Han-am’s “Seon-Buddhist Meditation Song”, and so on. Accordingly, it can be said that Gyung-heo was a farsightedly awakened intellectual who, at the same time, was also a literary man and a poet who created Buddhist sermons, words of songs, and songs in Chinese characters-minglement of Hangeul and Chinese characters-Hangeul. Gyung-heo’s association succeeds to Ji-nul’s Jung-hyae association and combined Sun-jong’s association with the thought of the philosophy of Maitreya’s paradise.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two associations can be confirmed in the aspect of the concern with collaborative ideology and community life through confederation. Of course, Seon-jong’s association corresponds to the philosophy of Maitreya’s paradise in the way that they both seek to popularize and generalize the way of Seon. And yet this is something that is original distinguished from customary associ |
目次 | Ⅰ. 문제와 구상 62 Ⅱ. 경허의 살림살이 65 1. 행리와 행장의 검토 65 2. 간경과 불사의 실제 69 Ⅲ. 경허의 사고방식 76 1. 수행과 가풍의 분석 76 2. 結社와 避世의 실제 84 Ⅳ. 정리와 맺음 92 |
ISSN | 12250945 (P) |
ヒット数 | 163 |
作成日 | 2021.11.23 |
更新日期 | 2021.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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