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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이십론 게송10에 대한 규기의 해석 (1) -- 설일체유부*의 대상론 비판=Kuigi's interpretation on Vasubandhu's The Twenty Verses on the Mind Only (1)
著者 朴仁成 (著)=Bak, In-seong (au.)
掲載誌 한국불교학=韓國佛教學
巻号v.50 n.0
出版年月日2008.02
ページ313 - 350
出版者한국불교학회
出版サイト http://ikabs.org/
出版地Korea [韓國]
資料の種類期刊論文=Journal Article
言語韓文=Korean
ノート저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キーワード극미=Many atoms; 극미의 화합=Combination of many atoms; 대상의 상; 생식=生識; 대상=帶相; The cause of the cognition; The appearance of the representation in the cognition; Like a sense organ
抄録이 논문은 세친의 유식이십론의 열 번째 게송과 이에 대한 논을 다룬다. 열 번째 게송은 다음과 같다.
그 경계는 하나가 아니고 또 다수의 극미가 아니고 또 화합 등이 아니니 극미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게송은 마음 바깥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 바깥의 대상은 세 가지이다. 즉 하나, 다수, 다수의 결합이다. 하나는 승론이, 다수는 설일체유부가, 결합은 경량부나 중현논사가 주장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이 중 다수의 극미가 대상이 된다는 설일체유부의 대상론을 다룬다.
다수의 극미가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논은 오직 “각각의 극미는 파악되기 않기 때문이다”는 한 문장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극미가 대상의 자격을 얻으려면 파악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극미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겠는데 이 뜻을 더 깊게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규기의 해석을 연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규기는 설일체유부의 대상론을, 진나가 관소연연론에서 쓴 ‘생식’과 ‘대상’이라는 두 개념을 적용하면서 규명한다. 대상이 대상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하나는 생식(生識)이고 또 하나는 대상(帶相)이다. ‘생식’은 식을 발생하게 한다는 뜻이고 ‘대상’은 식에 대상의 형상이 현현한다는 뜻이다. 그는 진나와 같이 소연연(所緣緣)을 연(緣)과 소연(所緣)으로 나누어 연은 ‘생식’으로, 소연 ‘대상’으로 본다.
유부는 다수의 극미, 곧 각각의 극미가 전오식의 대상이 된다고 했는데, 규기가 보기에 이는 대상이 되기 위한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기억이나 상상과 달리 전오식의 지각에는 생생한 형상이 현현한다. 이렇게 생생하게 대상의 형상이 현현하려면 대상이 실법(實法)이어야 하는데 유부의 실법은 식을 발생하게는 할지라도 식의 형상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This paper is concerned with the 10th verse of Vasubandhu's The Twenty Verses on the Mind Only. The 10th verse is as follows.
That object of perception is not one thing
Nor is it many atoms.
Also, it is not a compound, etc.,
Because atoms are not demonstrated [as real]

This verse means that there is no objects of perception that are external to the mind. The objects of perception can be divided into three, namely the one, the many, and the combination of the many. The one is a single thing, like in the Vaiśeṣika's assertion of a single form with parts. The many is many atoms, like in the Sārvāstivāda's assertion of really existing multiple atoms, each of which serves as a separate object of perception. The combination is a compound or conglamalate of atoms, like in the Sautrantika's assertion of really existing multiple atoms all uniting and combining to make objects of perception. In the treatise, there is only one sentence, saying “because the atoms cannot be grasped individually”, about the verse's line that many atoms cannot be the object of perception. It means that the atoms must be grasped to gain the qualification of the object, but they can not be grasped. That is why we need to understand this meaning widely and deeply. Here is the reason to investigate the interpretation of Kuigi.
Kuigi elucidate the theory on object in the Sarvāstivāda on the basis of two concepts, the cause of the cognition and the appearance of representation in the cognition, which is used in Dignāga's Alambanaparīkāvṛtti. The cause of the cognition means that the object makes the cognition occur, and the appearance of representation in the cognition means that when the consciousness occurrs, the representation appears in the cognition. Like dignāga, he asserts that Ālambanapratyaya can be divided into two aspects, namely ālambana and pratyaya, and that ālambana is equal to the appearance of representation in the cognition and pratyaya the appearance of representation in the cognition.
The Sarvāstivāda asserts that the many atoms or the individual atom can be the object of the previous five consciousness. Kuigi thinks that this fact fulfills only one of two conditions for gaining a requirement. The Sarvāstivāda asserts that the vivid representation appears in the perception of the previous five consciousness, and that the object must be a real thing so that the representation can appear vividly in the cognition. Kuigi, however, thinks that the real thing of the Sarvāstivāda makes the cognition occur, but doesn't become the representation of the cognition.

目次Ⅰ. 들어가기 316
Ⅱ. 게송10과 그 논의 성격 318
1. 게송10의 성격 318
2. 게송10의 내용 320
3. 게송10에 대한 논의 성격 323
Ⅲ. 『유식이십론술기』 자체의 해석 325
1. 극미는 실법(實法)이기에 대상을 발생하게 한다. 325
2. 오식에 극미의 상이 현현하지 않는다. 327
3. 논증식 328
Ⅳ. 『관소연연론』에서 인용하면서 하는 해석 331
1. 대상은 생식(生識)과 대상(帶相) 두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331
2. 논증식 333
Ⅴ. 『성유식론』에서 인용하면서 하는 해석 335
1. 화합의 위(位)에서 극미는 오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337
2. 오식에 극미의 상이 없기 때문이다. 338
3. 극미는 화합의 상이 있지 않다. 339
4. 어떤 위(位)에서든 극미의 체(體)와 상(相)은 차별이 있지 않다. 342
5. 화합한 위(位)에서도 극미는 오식의 대상이 아니다. 343
Ⅵ. 맺기 345
ISSN12250945 (P)
ヒット数123
作成日2021.11.24
更新日期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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