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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聖諦와 12緣起 불타 깨달음은 연기법인가?(Ⅱ)=Arya satya and Pratītya samutpāda: relate to Buddha awakening(Ⅱ)=四聖諦と十二緣起 佛陀の悟りは緣起法であるか(Ⅱ)
著者 權五民 (著)=Kwon, Oh-min (au.)
掲載誌 한국불교학=韓國佛教學
巻号v.47 n.0
出版年月日2007.02
ページ7 - 50
出版者한국불교학회
出版サイト http://ikabs.org/
出版地Korea [韓國]
資料の種類期刊論文=Journal Article
言語韓文=Korean
ノート저자정보: 경상대 철학과 교수
キーワード佛陀 自內證=Buddha awakening; 緣起法=pratītya samutpāda; 4聖諦=4arya satya; 3明=3vidyā; 甚深難知=very difficult to know
抄録본 논문은 「緣起法이 불타 自內證이라는 經證 검토-불타 깨달음은 연기법인가?(Ⅰ)」의 속편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구미나 남방불교권에서 출간된 불교개론서에서는 불타 자내증을 대체로 3明이나 이와 관련된 4聖諦로 이해하고 있는 반면, 일본이나 이에 절대적으로 영향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한결같이 緣起法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4성제의 ‘諦(satya)’는 ‘진리’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말일 뿐더러, 5部 4阿含에 언급된 불타 깨달음과 관련된 기사의 빈도나 文勢 상으로 보더라도 이것이 연기법의경우 보다 훨씬 많고, 또한 강렬하다.
일반적으로 불타 자내증이 연기법이라고 할 때, 연기법은 相依性으로 이해되며, 그렇기 때문에 無常이고 無我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空은 연기의 이론적 귀결(연기-무자성-공)이라는 『중론』의 논리를 차용한 것으로, ‘연기하기 때문에 무상하다’거나 ‘연기하기 때문에 무아이다’고 하는 말은 초기불전 어디에도 없다. 무상과 무아는 다만 경험적 사실이지 추론을 통해 도출되는 이론적 귀결이 아니다.
諸經에 의하면, 불타의 성도는 3明(宿住智證明死生智證明漏盡智證明)을 깨달아 괴로움을 초래하는 일체의 원인(번뇌)을 斷盡하여 열반을 증득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漏盡明은 4성제의 통찰을 통해 성취된다. 나아가 經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연기법에 대한 무지를 ‘無明’이라고 말하는 일이 없으며, 대개 과거미래현재의 三際나 4聖諦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8正道의 正見 역시 그러하다.
따라서 성도직후의 順逆에 걸친 12연기의 內觀은 다만 集諦와 滅諦의 구체적인 내관으로 보아야 한다. 즉 초기경전에서 연기란 궁극적으로 과거미래현재생의 존재방식을 밝혀 이에 대한 어리석음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12연기를 형용하는 ‘甚深難見(혹은 難知)’이라는 修辭 역시 대개의 경우 ‘전생에서 금생으로, 금생에서 후생으로 유전한다(從此世至彼世, 從彼世至此世)’는 말과 함께 설해진다. 그것은 理法으로서의 ‘연기’에 대한 말이 아니다. 또한 초기경전 상에서 無明(avidy)의 還滅인 明(vidy)의 용례는 오로지 3明이며, 3명은 과거미래현재의 三際에 대응한다. 이 같은 점으로 볼 때, 불타 깨달음을 ‘연기법’이라고 하기보다는 ‘4성제’라고 하는 편이 보다 더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이는 초기불교의 직접적인 해석체계라고 할 수 있는 아비달마불교의 전통적 이해였다.
불타 깨달음을 相依性의 緣起法이라고 하는 것은 대승의 진리관(空觀)에 근거한 해석으로, 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 역사를 무시한 특정의 교파 혹은 특정지역의 불교를 중심으로 한 宗學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Mainly in Korea and Japan, it is said to that Buddha obtained anuttarā samyaksaṃbodhi by awakening pratītya samutpāda, and they understand pratītya samutpāda as interdependence. But this is the interpretation through the view of truth of Mahāyāna(śūnyavāda). Because not only satya in arya satya is directly corresponded to the 'truth', but also the frequency and the intense of the articles related to Buddha awakening refered in Nikāya and Āgama are much more than pratītya samutpāda.
In this study, it research about 4arya satya, 12pratītya samutpāda,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m based on the facts that 4arya satya is Buddha awakening.

本稿は「緣起法が佛陀の自內證であるという經證への檢討-佛陀の悟りは緣起法であるか(Ⅰ)」の續編である。
實におかしいのは、歐米や南方の佛敎圈で出刊された佛敎の槪論書においては大体に佛陀の自內證を三明あるいはこれと關聯した四聖諦として理解しているが、日本やそれにより絶對的な影響を受けたわが國ではひとえに緣起法であると言っていることである。しかし、四聖諦の‘諦(satya)’は‘眞理’に直接對應する言葉であるばかりでなく、五部四阿含において言及される佛陀の悟りに關聯した記事の頻度や文勢からみてもこちらの方が緣起法の場合より遙かに多く、また强烈である。
一般的に佛陀の自內證が緣起法であるとする場合、緣起法は相依性として理解されており、そのゆえに無常であり無我であると?かれる。しかしこれは、空は緣起の理論的歸結(緣起-無自性-空)であるという中論の論理を借用したものであって、‘緣起するゆえに無常である’とか‘緣起するゆえに無我である’といった言葉は初期佛典のどこにも見當たらない。無常や無我とはただ經驗的な事實であって、推論を通じて導かれる理論的歸結ではない。
諸經によれば、佛陀の成道は三明(宿住智證明․死生智證明․漏盡智證明)を悟り、苦をもたらす一切の原因(煩惱)を斷ち切って涅槃を證得する一連の過程の中で成し遂げられている。そして漏盡明とは四聖諦の洞察を通して成就される。そのうえ、經においてはどんな場合にも緣起法に對する無知を‘無明’ということはなく、槪ね過去․未來․現在の三際あるいは四聖諦について知らないことであると言っている。八正道の正見もまたそうである。
從って、成道直後の順逆に跨る十二緣起への內觀はただ集諦と滅諦の具體的な內觀として受け取るべきである。すなわち、初期經典における緣起とは結局のところ、過去․未來․現在における生の在り方を明かしてこれに對する無知を取り除くためのものであり、十二緣起を形容する‘甚深難見(或いは難知)’という修辭もまたほとんどの場合‘前生より今生へ、今生より後生へ流轉する(從此世至彼世、從彼世至此世)’といった言葉とともに說かれる。それは理法としての‘緣起’を意味することばでない。そして初期經典上において無明(avidyā)の還滅である明(vidyā)の用例は?專三明であり、三明は過去․未來․現在の三際に對應する。こうした點から見れば、佛陀の悟りは‘緣起法’というよりはむしろ‘四聖諦’といった方がより說得力をもつ。そしてこれは阿毘達磨佛敎の傳統的な理解でもあった。佛陀の悟りを相依性の緣起法というのは大乘の眞理觀(空觀)に基づく解釋であって、これは時間と空間の中でできあがった歷史を無視した、特定の敎派あるいは特定地域の佛敎を中心とした宗學にすぎないと言うしかない。
目次Ⅰ. 들어가는 말 10
Ⅱ. 대승의 진리관을 통한 연기 이해 12
Ⅲ. 불타 자내증으로서의 4성제 19
Ⅳ. 4성제와 12연기 25
Ⅴ. 연기의 甚深難知의 의미 34
Ⅵ. 결어 41
ISSN12250945 (P)
ヒット数524
作成日2021.12.02
更新日期20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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