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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부와 대중부의 아라한에 관한 견해 차이 고찰 -- 『異部宗輪論』과 『論事』를 중심으로 =Consideration on difference of views on an arhat of Theravāda and Mahāsāṁghika -- Centered upon 『Yi-bu-jong-ryoun ron』(異部宗輪論) and Kathāvatthu(論事)
著者 崔恩英 (著)=Choi, Eun-young (au.)
掲載誌 한국불교학=韓國佛教學
巻号v.42 n.0
出版年月日2005.08
ページ109 - 136
出版者한국불교학회
出版サイト http://ikabs.org/
出版地Korea [韓國]
資料の種類期刊論文=Journal Article
言語韓文=Korean
ノート저자정보: 고려대학교 강사
キーワード아라한=arhat; 붓다=buddha; 부파불교=sectorian-Buddhism; 이부종륜론=Yi-bu-jong-ryoun ron; 논사=Kathāvatthu; 성문=Shravaka
抄録본 논문에서는 『이부종륜론』을 바탕으로 제시되고 있는 아라한과 붓다에 대한 상좌부와 대중부 부파들의 견해 차이를 『논사』와 비교하면서
살펴보았다.
아라한의 복업이 늘어날 수 있는가의 논의를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 부파불교 출가자들의 사회적 입장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붓다의 가르침이 더 나은 윤회의 삶을 지향하게 하는데 있지 않음을 분명히 알고, 아라한이 그런 행위를 통해서 복업이 증장될 수 없다는 견해를 분명히 갖고 있다. 또한 대승불교를 지향하던 사람들이 보시와 탑을 중시여기며 복을 구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그러한 행위만으로는 복업이 증진되지 않는다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아라한을 번뇌가 있는 有漏의 존재로 보는 가 그렇지 않은 無漏의 존재로 보는 가 견해를 달리하는 논의이다.
아라한과 그 밖의 성문과에 도달한 존재의 퇴전논의의 핵심은 수행하여 일정하게 번뇌를 버린 뒤에 다시 그러한 탐진치의 번뇌를 덧붙이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아라한은 퇴전하여 한 단계 아래인 불환과에 머무르는 것만이 아니라 심지어 예류과까지 퇴전할 수 있다. 여기서 예류과와 아라한이 공통된 것은 수도위에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성문들에게 아라한에 한번 도달했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修道의 길을 통해서 나태해짐을 막고 無學道에 도달했다는 자만심을 없애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라한에 도달했다는 것이 완성이 아니라 修道의 진정한 시작이 됨을 성문들은 자각하고 경계하였음을 아라한에 관한 여러 논쟁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붓다와 격별 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지만, 아라한과가 결코 안주해야하거나 끝마침의 단계가 아니기에 무학과에 도달했다는 自利에 자만하지 말고 끊임없이 이타행을 할 것으로 권유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논의 속에서 성문들의 지위가 보살, 붓다와 격별하게 된 것은, 그들을 차별하려는데 있었다기보다 스스로 붓다의 길을 가려는 지난한 결심과 경책의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두 문헌 모두 붓다에 대한 논의는 적고 아라한과 성문의 수행에 관한 논의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직접적으로 붓다의 특성과 관련된 내용을 자세히 분석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부파불교 시기 붓다와 아라한이 구별되는 실마리는 無生智에 있으며, 또한 그 지혜가 생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일상에서 작용하는가 하는 점이 끊임없이 요구되었을 것이라는 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유추 정도에 그쳤다. 본 논문에서는 주로 아라한의 항목으로 논의된 것들을 검토하여 그 의미를 드러내는데 중점을 두었고, 따라서 아라한에 관한 논의들이 가진 영향과 의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논자의 능력한계 때문에 직접적인 수행내용에 관해서는 다루지 못한 점과 論事 를 원전이 아닌 일역본을 이용한 점, 팔리어나 범어의 관련 원전을 비교하지 못하였다. 같은 관심을 가진 관련분야 연구자들의 밝은 질정을 기다리며 훗날의 연구과제로 삼고자 한다.

In this study, I have reviewed contents of an arhat and buddha described in Yi-bu-jong-ryoun ron comparing with Kathāvatthu.
When taking into consideration of an issue whether a mission of an arhat could increase, we naturally understand social positions of sectorian-Buddhism(部派佛敎) priests. They made themselves understood that teachings of the buddha do not step toward better Transmigration(輪廻), but an arhat proved that the mission could not increase through such teachings. With regard to such action as people who desired Mahayana Buddhism respected charity and a stūpa with a hope to have fortune, they had a negative idea. But, it is a controversial issue whether an arhat is an existence of 'having outflows'(有漏) with affliction or that of ‘undefiled’(無漏) without it.
An essence of discussion about existence of an arhat or other objects that reaches a Shravaka(聲聞) and is an issue whether they can throw out affliction and add such the three poisons(三毒)'s affliction. An arhat can go one-level down to ‘the fruit of not returning’(不還果) and even to ‘the fruit of entering the stream’(預流果). Here, both ‘the fruit of entering the stream’ and an arhat have upper level of asceticism practice in common. That means, in my opinion, it kept a Shravaka who once reached an arhat from getting idle through incessant asceticism practice and away from pride that they reached ‘The highest path’(無上道). It has been approved through many discussions that reaching
anarhat does not mean completion, instead real a Shravaka can be accomplished through asceticism practice.
Even through finally parted from buddha, an arhat does not mean completed level of practice, they should not be in self-satisfaction that they reached The highest path. They thought that the reason that a Shravaka parted from bodhisattva and buddha was because of accidental decision and policy to follow the way of the buddha of their own, rather than differentiation.
Those two literatures have more discussion about practice of an arhat and a Shravaka, but less discussion about the buddha. That's why I have failed to analyze characteristics and related contents of the buddha. Accordingly, a clue that differentiates the buddha from an arhat during sectorian-Buddhism is based upon 'The wisdom of non-arising'(無生智), in addition even if such wisdom is alive, I assume whether it was active in a daily life was asked without end. In this thesis, I mainly focused upon the meaning by reviewing items of an arhat, as a result I came to
目次Ⅰ. 들어가는 말 4
Ⅱ. 상좌부부파 내에서의 다른 견해 6
1. 아라한의 업과 관련된 문제 6
2. 이승과 붓다의 해탈과 성도는 같은가 다른가? 9
Ⅲ. 상좌부와 대중부의 다른 견해의 쟁점 13
1. 붓다의 말씀은 뜻을 다했는가? 붓다의 능력·수명·교화력은 어느 정도인가? 14
2. 아라한은 退地인가 不退地인가? 16
Ⅳ. 나오는 말 20
ISSN12250945 (P)
ヒット数82
作成日2021.12.09
更新日期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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