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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辛旽)의 불교 신앙과 불교 정책=Buddhist Beliefs and Buddhist Policy of Shin Don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著者 최연식 (著)=Choe, Yeon-shik (au.)
掲載誌 불교학보=佛教學報
巻号v.68 n.0
出版年月日2014.07
ページ267 - 291
出版者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Institute for Buddhist Culture
出版サイト https://abc.dongguk.edu/kbri/
出版地Korea [韓國]
資料の種類期刊論文=Journal Article
言語韓文=Korean
ノート저자정보: 동국대학교(서울) 사학과 부교수
キーワード辛旽=Shin Don; 恭愍王=King Gongmin; 觀音信仰=Avalokitesvara Belief; 文殊會=Manjusru Belief; 文殊信仰; 千熙=Cheonhee; 神佛習合; 妙淸=Myocheong; Syncretism of Buddhism and Indigenous Belief
抄録신돈(辛旽)은 전통적으로 요승(妖僧)으로 일컬어졌지만 실제로 그의 승려로서의 행적이나 환속 이후의 불교와 관련한 활동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가 관음신앙 및 문수신앙을 중시하였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그의 관음신앙과 문수신앙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배경을 갖는지, 또한 당시 고려 사상계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였다. 이 글에서는 공민왕대 불교계에 대한 최근의 연구와 그동안 활용되지 않는 자료들을 토대로 신돈의 불교 신앙과 불교 정책을 새롭게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개경 근처에 있는 낙산사를 원찰로 삼고 그곳에 상주하는 관음보살에게 우왕의 안녕을 기원하는 등 낙산에 상주(常住)하는 관음보살의 친견을 중시하는 관음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의상의 사상을 계승하는 고려후기 화엄종의 대표적 신앙 모습으로서, 이러한 신돈의 관음신앙 모습은 그가 환속하기 이전에 화엄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돈은 또한 문수회를 중시하여 그의 집권기간 중 매년 대규모의 문수보살을 공양하는 법회를 개최하였다. 이 문수회는 순수한 불교적 의례가 아니라 고려의 최고 신격(神格)으로서 국가의 어려움을 구원하는 호국백두악태백선인(護國白頭嶽太白仙人)의 실덕(實德)(본체)으로서의 문수보살을 공양하는 것으로서, 토착신앙 및 도참과 결합된 신불습합(神佛習合)의 신앙 의례였다. 이는 일견 순수하지 못한 불교 신앙으로 보이지만 고려가 건국 이래 토착신앙 및 풍수도참사상과 불교의 공존 및 융합을 추구하였던 것을 고려할 때 고려의 전통적 불교의 모습을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돈은 또한 기존의 권문 및 세족과 밀접하게 연결된 불교계를 새로운 세력으로 교체하려한 공민왕의 불교정책을 계승하면서도 기존 불교계의 입장을 고려하는 절충적인 불교 정책을 추진하였다. 공민왕이 고려 불교계에 기반이 없는 원나라 유학파 선사들을 중용한 것과 달리 신돈은 국내 불교계의 주요 종파 출신 중에서 권문 및 세족과 연결되지 않은 인물들을 중용하였다. 동시에 그는 그들로 하여금 원나라 간화선사의 인가(印可)를 받게 하여 기존과 다른 새로운 간화선 사상으로 불교계를 변화시키려한 공민왕의 의도도 따르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신돈의 불교 정책은 그가 공민왕의 신임을 잃고 실각하면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공민왕은 신돈을 숙청한 이후 신돈에 의해 등용된 승려들을 배제하고 다시 원나라 유학파 간화선사들을 중용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불교계를 주도해가게 하였다. 이러한 불교 정책은 공민왕의 사후에도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기존의 불교 교단들이 크게 위축되는 대신 태고보우와 나옹혜근 등을 비조로 하는 새로운 간화선의 흐름이 불교계의 주류적 흐름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Though Shin Don has been called as a vicious monk, his career as a monk and his Buddhist activities after returning to the secular life were hardly known. It is known tha he had much interest in Guanyin[Avalokitesvara] and Manjusri beliefs, but the background and the influence of his Buddhist beliefs were not examined yet. In this article we tried to re-examine Shin Don’s Buddhist beliefs and Buddhist policies through reviewing the materials not fully used yet and with the help of recent researches on the Buddhism of late Goryo dynasty.
Shin Don founded the Naksan-sa dedicated to Guanyin as his supplication temple near Gaegyeong, the capital of Goryo, and prayed the wellbeing of Monino, the future King Wu. As Naksan is the place where Guanyin always stay we can infer that he followed the kind of Guanyin belief which emphasizes the visiting and direct worship of the Bodhisattva at Naksan. This kind of belief was the typical belief of Huayan school in late Goryo dynasty. Shin Don must have had close relations with the Huayan school during his priesthood.
Shin Don also emphasized the Manjusri belief. He hold the Manjusri worship meeting several times during his reign. This Manjusri-meeting was not a genuine Buddhist ceremony but a syncretic one where the Manjusri Bodhisattva was merged with the god of Mt. Baekdu(White-head) who was regarded as the protector of the country. Shin Don's Manjusri meeting must have been influenced by the Palseong[Eight Divines] worship of Myocheon who succeeded Doseon, the founder of Goryeo geomancy and figure-divination tradition. Shin Don's Manjusri meeting might be criticized as impure belief, but it was the not the deviation from Goryo Buddhist tradition where the indigenous beliefs and the geomancy and figure-divination were merged and co-existed.
In the Buddhist policy, Shin Don took the compromising stance. He succeeded
the Buddhist policy of King Gongmin who tried to change the main stream of Buddhism, while he also respected the Goryeo Buddhist tradition. Different from King Gongmin who took much of the new kind of monks who had no domestic background but studied and got the recognition from renowned Chuan masters in Yuan, Shin Don selected as representative monks those who practiced in the domestic schools but had no relations with the powerful families. But in other respects he also followed King Gongmin's policy; he make the monks go to Yuan and get the recognition from renowned Chuan masters. Shin Don's Buddhist policy was the compromise of King Gongmin's policy and Goryeo Buddist tradition. But his Buddhist policy could not last long. As
目次I. 머리말 269
II. 觀音信仰과 洛山寺 경영 270
III. 文殊會 설행과 사상적 배경 274
IV. 辛旽 집권기 불교정책의 내용과 성격 283
V. 맺음말 286
ISSN12261386 (P)
ヒット数67
作成日2022.09.19
更新日期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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