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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불교의 중국진출과 아시아주의=Advance into China and Asianism of Japanese Buddhist in Modern Times
著者 조승미 (著)=Cho, Seung-mee (au.)
掲載誌 불교학보=佛教學報
巻号v.49 n.0
出版年月日2008.08
ページ279 - 299
出版者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Institute for Buddhist Culture
出版サイト https://abc.dongguk.edu/kbri/
出版地Korea [韓國]
資料の種類期刊論文=Journal Article
言語韓文=Korean
ノート저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キーワード근대불교=Modern Time Buddhism=近代佛敎; 일본불교=Japanese Buddhism=日本佛敎; 정토진종=淨土眞宗=Jodo Shin Shu; 동본원사=東本願寺=Higashi(East)-Hongwanji; 삼국불교동맹=Confederation of Three Buddhist Countries; Nitiren; Manchuria; Imperialism=제국주의; Ogurusu Kocho=小栗栖香頂; Asianism=아시아주의; Buddhist Propagation=불교전도; 일련종=日蓮宗; 만주=滿洲
抄録메이지 초기부터 태평양전쟁 패전 때까지 일본불교는 해외전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최초의 해외전도는 중국에서 이루어졌으며, 정토진종 동본원사파의 오구루스 코초(小栗栖香頂)에 의해서였다. 오구루스는 서구 기독교세력으로부터 아시아 불교가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중국불교와 연대할 것을 생각하였는데, 중국불교의 피폐함을 확인하고는 이 지역에의 전도로 목적을 전환하였다. 그의 중국전도 활동에 있어서 의의는 일본불교가 다른 지역인에게 직접 전도하기 위해 최초로 시도한 것이며, 한편으로 또 그것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일찍이 확인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오구루스가 주장한 삼국불교연맹은 아시아불교가 공동에 처한 상황을 대변해 주면서 동시에 일본을 중심에 놓은 팽창주의적 아시아론의 한계를 그대로 노정하고 있었다. 이후 일본의 불교전도는 만주, 시베리아지역을 비롯하여 태평양 군도의 여러 섬까지 확대되었는데,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경로를 따라간 것으로, 일본 불교의 제국주의 침략에의 첨병 및 문화공작 역할을 확인하게 된다. 한편, 하와이 및 북미대륙에의 불교전도 확대는 이 지역으로의 일본인 이민자 수가 증가함에 따른 현상이었다. 전도대상이 주로 일본인에게 한정되고 다른 아시아인들에게 크게 전파되지는 못했던 것은 일본불교가 가진 세속성과 국가주의적 성격에도 기인하지만, 근본적으로 군사적 침탈에 수반해서 불교전도가 이루어졌던 것 때문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근대 일본불교는 지역적으로는 매우 확대된 전도 교선을 확보했었지만, 대부분 거류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서 패전이후 그 거점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종교적 차원에서의 전도는 이와 같지만, 일본불교의 해외전도의 특징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중국진출을 위한 만주포교이다. 만주사변 이후 대륙 침략에 수반한 식민지 정책 동조의 일환으로 불교 각 종파의 만주 포교는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 불교와 관련한 아시아론은 이미 불교적 관점이 거의 사라지고 제국의 침탈에 동원된 담론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Japanese Buddhism advanced into China by Ogurusu Kocho(小栗栖香頂) of Higashi-Hongwanji sect for the first time in Meiji Era. But it was not easy for Chinese Buddhist to accept the Jodo Shin Shu(淨土眞宗) that has secularism and nationalism. Therefore, Japanese Buddhism had spread mainly among the Japnese people in China, and had mobilized by dispossess of Japanese imperialism. The Confederation of Three Buddhist Countries proposed by Ogurusu Kocho to Chinese buddhist leader was to correspond together to aggressive missionary work of Western Christianity, but it could not arouse many Asia Buddhists's sympathy because it had the superiority complex of Japanese and the aim for expansionism. Manchuria had be taken a serious view by Japanese Buddhist missionaries to advance for China. So, we can find traces of many buddhist sect's activity in this area. Nevertheless, we cannot see characteristic color of buddhism in the buddhist Asianism of 1930's.
目次I. 머리말 281
II. 메이지 시대의 중국전도 282
III. 1930년대 전쟁시기의 중국진출 290
IV. 맺음말 297
ISSN12261386 (P)
ヒット数25
作成日2022.10.19
更新日期202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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