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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高句麗 불교의 재검토=Re-examination on the Buddhism of Later Goguryeo
著者 최연식 (著)=Choe, Yeon-shik (au.)
掲載誌 보조사상=普照思想=Journal of Bojo Jinul's Thought
巻号v.40 n.0
出版年月日2013.08
ページ121 - 161
出版者普照思想研究院
出版地Korea [韓國]
資料の種類期刊論文=Journal Article
言語韓文=Korean
ノート저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キーワード후고구려(=태봉)=Later Goguryeo(=Taebong); 弓裔=Gungye; 禪宗=Seon(=Zen) Buddhism; 逈微=Hyeongmi; 慶猷=Gyeongyu; 『健拏標訶一乘修行者秘密義記』=The Secret Teaching of Gandhavyuha One Vehicle Practicer; 미륵신앙=Maitreya belief
抄録지금까지 후고구려(태봉)의 불교에 대해서는 창건자 궁예의 미륵신앙만이 강조되어 왔지만 실제로는 국왕 弓裔의 존숭과 후원하에 선종이 발전하고 있었고, 신라 의상계의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대승기신론과 밀교의 사상을 융합한 독자적인 화엄학 문헌이 찬술되기도 하였다. 무위사 선각대사비와 오룡사 법경대사비에는 궁예가 선승들을 중시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한 모습이 보이고 있다. 궁예는 912년 8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라도 남부지역을 공략하던 중 선각대사를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들게 되었고, 이후 그와 함께 철원으로 귀환하였다. 선각대사와 함께 함께 雲居道膺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던 법경대사도 같은 시기에 궁예를 따라 태봉의 수도로 이주하였다. 전라도 원정에서 이 지역에 성행하고 있던 선종을 접한 궁예는 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태조 왕건의 종교 정책의 특징이라고 생각된 선종 승려에 대한 적극적인 포섭 정책도 실제로는 전임자인 궁예의 정책을 계승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중국 房山에 있는 金나라 때의 大藏石經에 들어있는 『健拏標訶一乘修行者秘密義記』는 중국 화엄종 조사인 法藏의 저술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10세기 前半에 후고구려 지역에서 찬술된 화엄학문헌이다. 이 책은 사용되고 있는 이론과 용어들로 볼 때 화엄교학 그 중에서도 의상계 화엄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으며, 특히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7언 96구로 구성된 <法界圖印>은 의상의 <法界圖>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 책에는 화엄사상 외에 모든 존재의 본질적 동일성을 강조하는 大乘起信論의 영향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密敎的 요소와 《周易》이나 五行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신비적, 주술적 요소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신라 중심지역과는 구별되는 후고구려 지역의 화엄학 모습으로 이해된다. 후고구려에서 당시의 주요한 불교 사상인 화엄학과 선종이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종래 토착적, 신비적 신앙으로 생각되었던 궁예의 미륵신앙 역시 당시 불교계의 주요한 흐름이었던 진표계 미륵신앙을 수용한 것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경우 후고구려에는 신라 하대의 주요한 불교사상인 의상계 화엄학과 진표계 미륵신앙, 선종 등이 모두 수용되어 발전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려 건국 직후 이들 세 가지 흐름은 고려 불교계의 주류적 흐름으로 확립되는데, 그 배경에는 이미 후고구려(태봉) 시대부터의 발전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Up to now only the Maitreya belief of Gungye, the founder of the kingdom, has been emphasized about the Buddhism of Later Goguryeo(=Taebong). But the Seon(Zen) Buddhism also prospered with the support of Gungye who had close relations with several eminent Seon(Zen) masters. There was written an interesting book which synthesized the Hwa'eom(Huayan) philosophy and esoteric Buddhism. In the steles of Seon'gak Master Hyeongmi and Beopgyeong Master Gyeongyu the devotion of Gungye to the Seon Masters was well found. On his expedition to South-western area of Korean peninsula in August 912 Gungye had the chance to contact the Seon Buddism by meeting Hyeongmi and Gyeongyu who had been practising the Seon Buddhism in the area. He soon understood the importance of the teaching and paid respects to them. He even asked them to accompany him to Cheolwon, the capital of Later Goguryeo. His esttem and supports to the masters continued in the capital just before his downfall. The supporting and gaining the favours of Seon masters policy, one of the peculiar policies of Wang Geon, the founder of Goryeo dynasty, might have modelled after Gungye's. The Secret Teaching of Gandhavyuha One Vehicle Practicer preserved among the stone tripitaka in Fangshan China is a rare Buddhist work written in Later Goguryeo. Though it holds the author being Fazang, the famous Chinese Huayan patriarch, the place names shown in the book are found in the territory of Later Goguryeo. The theories and terms of the work are greatly influenced by Korean Hwa'eom philosophy, especially that of Uisang's. Even the diagramed poem of Seal of Dharma attached to the book modelled after the Seal of Uisang. In this book we can also find the influence of the Dasheng qishin lun, esoteric Buddhism and the East Asian mysticism such as the I-ching and the Five Elements. The contents of the book might have reflected the Hwa'eom philosophy of the Later Goguryeo. The main trends of the late Shilla and early Goryeo Buddhism consisted of newly imported Seon Buddhism, the traditional Hwa'eom following the Uisang's philosophy and Maitreya belief emphasized by Jinpyo and his disciples. Among them we can find the Seon Buddhism and Hwa'eom prospered in Later Goguryeo. So we can also infer that the Maitreya belief of Gungye, which have been regarded as the distorted belief influenced by mystical indigenous religion, might have followed that of Jinpyo. Then, the Buddhism of Later Goguryeo can be re-appraised as the mediator between late Shilla and Goryeo Buddhism.
目次1. 後高句麗 불교 재검토의 필요성 125
2. 弓裔와 禪宗 126
3. 後高句麗 지역의 華嚴學 동향 139
4. 後高句麗 불교의 이해 방향 154
ISSN12297968 (P)
DOIhttp://doi.org/10.22859/bojoss.2013..40.004
ヒット数52
作成日2023.01.30
更新日期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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