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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의 구성요소를 둘러싼 여러 학파의 해석 (1) - 행복의 실체 논쟁을 중심으로=On the Interpretation of the Factor of Dhyā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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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 |
김성철 (著)=Kim, Sung-chul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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掲載誌 |
인도철학=印度哲學=Korean Journal of Indian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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巻号 | n.55 |
出版年月日 | 2019 |
ページ | 47 - 82 |
出版者 | 印度哲學會 |
出版サイト |
http://krindolog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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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地 | Korea [韓國] |
資料の種類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言語 | 韓文=Korean |
ノート | 저자정보: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교수 |
キーワード | 정려; 행복; 경안; 설일체유부; 경량부; 유가행파= Yogācāra; Sautrātika; Sarvāstivādin; praśrabdhi; sukha; dhyāna |
抄録 | 열기/닫기 버튼
초기경전에서는 석가모니 붓다가 고행을 버린 후, 4정려를 닦아 깨달음에 이른 것으로 묘사된다. 4정려의 수습에서는 고행에 대비되는 “행복”이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학파적 해석은 일정하지 않다. 유부는 초정려와 제2정려의 행복을 신체에 속하는 느낌이 아닌 경안이라고 하고, 제3정려의 행복은 정신적 느낌의 행복이라고 한다. 이는 제2정려 이상에서 신식의 발생을 인정하지 않는 심식론과 체계적 정합성을 가진다. 이에 비해 경량부는 세 정려의 행복이 모두 신체에 속하는 느낌으로 간주한다. 이는 경량부가, 대중부 등과 마찬가지로, 정려에서도 신식의 발생을 인정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알라야식이 도입되기 이전 최초기 유가행파 문헌에서는 유부와 마찬가지로 정려의 행복을 경안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라야식의 도입 직후에는 정려지의 행복을 신체에 속하는 느낌으로 간주한다. 이는 경량부 견해와 일치한다. 다만 이 행복은 신식이 아니라 알라야식과 결합한 느낌이다. 유가행파도 제2정려 이상에서는 신식의 발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정려지의 행복에 대한 제 학파의 견해 차이는 기본적으로는 명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신체적 경험의 미세함을 반영할 것이다. 이러한 경험의 해석은 결국 각 학파가 가진 철학적 배경과 이론적 토대에 기반할 수 밖에 없다. 각 학파의 정려지 해석에서 보이는 차이는 실제적 경험의 차이에서 유래한다기 보다는 각 학파가 가진 이론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The early Buddhist literature dipicts the achievement of the Buddha’s enlightenment through the practice of the fourfold Dhyāna after abandoning ascetic practices. Within the training of the fourfold Dhyāna, the “Happiness (sukha)” take part as an important element which contrasts with ascetic practices. However, the Buddhist schools have different interpretations toward the sukha. Sarvāstivādin regards the sukha of the first and the second dhyāna not as a feeling which belongs to the body (kāyikī vedanā) but as a praśrabdhi and considers the sukha of the third dhyāna as the feeling which belongs to the mind (caitasikī vedanā). This holds a systematic consistency with the theory of mind that does not admit the occurrence of the consciousness of body (kāyavijñāna) from the second dhyāna upward. In comparison, Sautrāntika considers the sukha of all three dhyānas as kāyikī vedanā. This suggests that Sautrāntika, like Mahāsāṃghika, admits the occurrence of the kāyavijñāna within the dhyāna. The earliest Yogācāra literature considers the sukha of first two dhyānas as a praśrabdhi like as Sarvāstivādin. However, immediately after the introduction of ālayavijñāna, Yogācāra school seems to consider the sukha as to the kāyikī vedanā. This coincides with the opinion of Sautrāntika, though the sukha is not combined with the consciousness of body but with ālayavijñāna, because the Yogācāra school also does not admit the occurrence of the kāyavijñāna from the second dhyāna upward. The different opinions on the sukha as a factor of dhyāna would reflect basically the subtleness (sūkṣma) of mental and physical experiences that occur in the meditation. The interpretation of these experiences eventually has to rely on the philosophical background and the theoretical foundation of each school. The differences between the interpretation of factors of dhyāna by each school, result from a different theoretical view of each school rather than a different actual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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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 I 서론. 48 II. 『구사론』의 정려지. 50 III. 정려지의 행복에 대한 유부와 경량부의 논쟁.57 IV. 『유가사지론』의 정려지. 67 V 결론.75 |
ISSN | 12263230 (P) |
ヒット数 | 112 |
作成日 | 2023.10.28 |
更新日期 | 2023.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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