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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과 반야중관의 관계=The Relations between Seon and Prajñā-Madhyama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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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者 |
김성철 (著)=Kim, Sung-Chul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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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處題名 |
불교학연구=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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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期 | v.32 |
出版日期 | 2012.08 |
頁次 | 243 - 278 |
出版者 | 불교학연구회=佛教學研究會 |
出版者網址 |
http://www.kab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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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地 | Daegu, South Korea [大邱, 韓國] |
資料類型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使用語言 | 韓文=Korean |
關鍵詞 | 선=Seon; 간화선=Ganhwa Seon; 반야중=Prajñā-Madhyamaka; 삼론학=Sanlun; 승랑=Seungrang; 중도=Middle Way |
摘要 | 역경을 통해 용수의 중관학을 중국에 소개했던 구마라습이 천화 한 후, 삼론의 가르침은 점차적으로 불전 학습의 주변부로 밀리면서 왜곡되고 있었는데 고구려 요동성 출신의 승랑(僧朗: 450~530경)이 장강(長江) 이남의 남조 불교계로 들어와 교화활동을 시작하면서 삼론의 정맥이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그 즈음에 보리달마가 중국에 들어와 전법을 시작하였으며 선종의 제2조로 기록하는 혜가(慧可: 487~593)와 삼론가인 혜포(慧布: 518~587)의 만남에서 시작하여 선복(善伏: ?~660)과 법여(法如: 638~689)에 이르기까지 근 1세기에 걸쳐서 삼론학파와 선종 사이에 인적, 사상적 교류가 이어졌다. 또 우두 법융의 ‘민절무기’사상이나 보리달마의 ‘무득정관(無得正觀)’사상에서 보듯이 초기 선종의 사상적 기조는 반야중관의 삼론학과 다를 게 없었다. 선종은 삼론학, 즉 반야중관학의 토대 위에서 성립했지만, 그 문헌이나 인물이 아니라 그 방식을 계승하였다. 다시 말해 반야중관학의 가르침을 체화(體化)한 후 말과 행동을 통해서 현실 속에서 이를 그대로 구현한 인물들이 선승들이었다. 삼론사상 가운데 삼중 이제설, 이내이제설 그리고 중도불성론의 방식이 선승들의 문답에서 발견된다. 또 『회쟁론』에서는 “데와닷따가 집에 없다.”는 비유를 들어서 공성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는 마조의 도불용수 사상과 다를 게 없다. 참선의 필수 요건으로 대신근(大信根)과 대분지(大憤志)와 대의정(大疑情)의 셋을 든다. 선(禪)을 ‘정(定)과 혜(慧)를 함께 추구하는 수행’이라고 규정할 때 이 세 가지 마음 가운데 ‘대신근’과 ‘대분지’는 ‘정’의 토대가 되고, ‘대의정’은 ‘혜’와 연관될 것이다. 간화선 수행이 ‘수정주의자의 삼매’가 아니라 불교적 수행일 수 있는 이유는 ‘큰 의심’을 품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의심이라는 심리상태’는 ‘중도’에 다름 아니다. 의심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우리의 생각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다. 백 가지 생각이 떠올라도 그 모두 ‘의문에 대한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심’의 상태를 지속할 때 수행자의 마음은 백 가지, 천 가지 대안(代案)을 모두 치면서 중도의 궁지로 들어간다. 숭산 행원 스님의 “Only Don’t know”, “오질 모를 뿐”의 자리다. 백, 천 가지 ‘앎’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리다. 분별 이 끊어진 자리다.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絕百非)’에서 ‘이사구(離四句)의 중도’와 ‘절백비(絶百非)의 의심’. 우리의 마음을 중도의 지혜, 탈이분법의 지혜, 해체의 지혜, 공의 지혜로 몰고 가는 간화의 한 축이다.
After the death of Kumarajīva, who had introduced Madhyamaka studies to China through his sutra translation work, the teachings of the Sanlun were being distorted and pushed aside from the mainstream of Buddhist studies. The true lineage of the Sanlun was only revived when Seungrang (僧朗: circa 450~530), a native of Yodong Fortress in Korea’s Goguryeo Kingdom, came to China’s Southern Dynasty, located south of the Yangtze River, and began to teach. By that time, Bodhidharma had come to China and began to propagate Dharma. Exchanges continued for almost a century between the Seon School and Sanlun scholars beginning with the first encounter between Huike(慧可: 487~593), the 2nd Patriarch of the Seon School and Sanlun scholar Huibu(慧布: 518~587), and later between Shanfu(善伏: ?~660) and Faru(法如: 638~689). Farong believed that all things are intrinsically empty and without substance, and Bodhidharma taught that enlightenment is not a goal to be attained but that all beings are originally Buddhas. These similar thoughts indicate that the philosophical basis of the early Seon School was not much different from the Sanlun studies of Prajñā-Madhyamaka. Although the Seon School was established on the foundation of Sanlun studies, that is, Prajñā-Madhyamaka studies, it did not use Sanlun texts or quote its scholars, but rather, adopted its methods. In other words, Seon monks thoroughly understood the teachings of Prajñā-Madhyamaka studies and embodied it in their daily lives through their words and deeds. Among Sanlun thoughts, ‘Two Truths in Three Steps(三重二諦)’, ‘The Two Truths as Principle(理內二諦)’ and ‘Buddha Nature as a Middle Way’ are found in the Dialogues of Seon Masters. In Vigrahavyāartanī, Nāgārjuna used a simile of “There is no Devadatta in the house.” to express the right meaning of Emptiness. This simile is not different from Mazu’s Claim that the Way does not Require Cultivation(道不用修). The three essential elements of Seon meditation are often said to be: great faith, great indignation and great doubt. When we define Seon(禪) as a “practice which cultivates concentration and wisdom together,”great faith and great indignation become the foundation of concentration, and great doubt connects us to wisdom. If Ganhwa Seon practice is seen as a Buddhist practice which transcends the “concentration of revisionists,”one good reason may be that it has the perspective of the Middle Way and it exhorts practitioners to harbor great doubt. The “mental state called doubt”is none other than the Middle Way. When doubt is sustained, our thoughts cannot settle on any single thing. The reason is, even when a hundred thoughts arise, none of them is the “right answer to the question.”Wh |
目次 | I. 초기 선종과 삼론학파의 인적 교류 246 II. 반야중관으로 풀어 본 선사들의 언행 251 1. 삼중이제-진제를 지향하는 변증적 파기 252 2.공의 의미와 마조의 도불용수(道不用修) 256 3. 이내이제(理内二諦)-"손가락이 달이다." 261 4. 중도불성의 구현-딜레마와 중화작용 264 III. 간화선 수행의 중도적 성격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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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0642 (P) |
點閱次數 | 209 |
建檔日期 | 2021.05.28 |
更新日期 | 2021.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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