釋迦塔 발견 墨書紙片의 내용을 통해 본 高麗時代 佛國寺의 현황과 운영=The Organization and Adminstration of Bulguk-sa Temple in Early Goryeo Period Seen Through the Documents Found at Shakamuni Stupa
석가탑=Shakamuni stupa; 석가탑 묵서지편; 佛國寺=Bulguk-sa temple; 사원조직; 三綱=three cords; 華嚴宗=Huayan school (of Goryeo); 法相宗; 승려의 구성; 和尙=Whasang; 山神說經法會; 功德天法會; documents found in Shakamuni stupa; administration system of temple; Yogacara school (of Goryeo); the Organization of monks; mass for Mountain spirit; mass for Srimahadevi
摘要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묵서지편에서는 고려시대 불국사의 현황과 사찰 운영,승려들의 구성에 관한 중요한 내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화엄사찰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온 불국사가 11세기 전반 당시에는 유가업 즉 법상종의 사찰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불국사의 종파를 알려주는 구체적 자료로서 중요할 뿐 아니라 불국사와 관련된 기존의 자료들을 새롭게 검토할 기반을 제공하는 것으로서도 의미를 갖는다. 이 기록을 토대로 기존의 자료들에 대한 비판적검토를 한다면 불국사의 종파 변천 과정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묵서지편에는 기존에 알려진 사찰의 三剛(綱)典구성과는 다른 불국사의 삼강전과 다른 자료에는 보이지 않는 大官典, 都色典, 塔寶典등이 보이고 있는데, 이를 통하여 고려시대 불국사의 사찰 운영 조직의 구체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되었다. 특히 삼강전의 경우는 기존에 알려진 禪宗계열 사찰들과는 구별되는 敎宗사찰의 구체적 사례로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묵서지편에는 불국사에서의 山神을 위한 說經법회와 功德天을 모시는 법회 등이 보이고 있는데, 고려시대 사찰 의례의 구체적 자료로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한편 묵서지편에는 1024년과 1038년 당시 불국사에 머물면서 석탑 중수 작업에 참여하였던 3백여 명의 승려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시대 승려들의 명단 중 가장 많은 분량이다. 묵서지편에 기록된 불국사승려들 중 약 20퍼센트는 僧職을 가진 고급 승려로 나타나고 있으며, 승직을 갖지 않은 일반 승려들 중 일부는 和尙(上)이라는 존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묵서지편에 기록된 승려들의 신분과 중수 작업에의 참여 내용 등을 보다 면밀하게 분석하면 당시 승려들의 존재양태 및 위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n the documents found at Shakamuni stupa in Bulguk-sa we can find some important informations about the temple in early Goryeo period; the organization of the monks, the administration of the temple, and the sect to which it belonged. At first, the documents show that Bulguk-sa was a Yogacara temple in the early 11th century. Up to now Bulguk-sa has been thought to have belonged to Huayan school in early Goryeo period because it was listed among the temples where Huayan Master Nakjin(1045~1114) had resided in his stele. As the information of the new documents is much more believable the contents of the stele should be re-understood. It is probable that Master Nakjin did not reside at Bulguk-sa but stayed there shortly for a special business. Bulguk-sa must have been a Yogacara temple as it was also an permanent residence for Yogacara Master Hyeyeong (1228~1294). Secondly, the adminstration system of the bulguk-sa is different from that of other temples. It is the only case of the academic temple in Goryeo period. The Daegwan-jeon(大官典), the Dosaek-jeon(都色典), and the Tappo-jeon(塔寶典) which consisted the three cords(三綱), the adminstration system of the temple, never seen in othe materials. They must have been the posts located only in the academic temples. Thirdly, there are listed about 300 monks who resided in Bulguk-sa and participated in the restoration of the stupa. It outnumbers the monks whose name is known before. Among the monks listed in the documents only less than 20percents hold the priest posts. The proportion of the high-lanking and ordinary monks might have been the same in other temples. In the documents very few monks called as “Whasang(和尙 or 和上)” took the most important roles in the temple. The Whasang might have been the honorific title given to the highest monks in the temple. Lastly, we can find some special Buddhist masses such as mass for Mountain spirit and mass for Srimahadevi(=Rakshimi). They are important cases in understanding Buddhist beliefs and rituals practiced in Goryeo temples.
目次
I. 머리말 241 II. 고려시대 佛國寺의 소속 종파 242 III. 佛國寺의 운영조직과 法席 247 IV. 佛國寺의 승려 구성 252 V. 맺음말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