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山 秀蓮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 한국불교사적 지위와 한국불학사적 위상=Life and thought of Ku-san Su-ryon(九山 秀蓮) - His position in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m and Korean Buddhist thought
보조 지눌; 효봉 학눌; 구산 수련=Ku-san Su-ryon=九山秀蓮; 정화불사 제2 정혜결사운동=The second movement of the association of meditation and wisdom=第二定慧結社運動; 칠바라밀=seven paramita=七波羅蜜; 간화선=Koan- Seon=看話禪; 정혜쌍수; 돈오점수=Sudden-awakening and gradual- cultivating=頓悟漸修; Ji-nul=知訥; Hyo -bong=曉峰
摘要
이 논문은 九山 秀蓮(1909~1983)의 안팎으로 펼친 역사적 살림살이를 고찰하고 앞뒤로 펼친 철학적 사고방식에 대해 연구한 글이다. 구산은 지눌의 목우가풍과 효봉의 수선가풍을 계승하면서도 자신의 독자적 해석을 가미하였다. 그는 1954년에 ‘불법에 대처승은 없다’는 기치 아래 종단정화운동이 일어나자 상경하여 서울 선학원에 머물며 여러 비구 도반들과 전국비구승대회를 개최하여 정화불사를 위한 ‘종단정화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구산은 ‘단지 혈서’ 탄원서 작성을 통해 불교 종단정화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지눌-효봉의 정혜결사를 계승하기 위하여 송광사를 거점으로 제2의 정혜결사운동을 주창하였다. 그리고 구산은 대승불교의 보살행인 육바라밀에다 ‘만행바라밀’을 추가하여 ‘봉사의 날’로 새롭게 해석한 칠바라밀을 제창하여 생활불교의 길과 대중불교의 길을 열었다. 나아가 그는 1973년 하안거 결제 이래 송광사 내에 불일국제선원을 개원하여 그의 문하로 출가한 비구 비구니 제자들은 전 세계 15개국 53명에게 한국선을 전수하였다. 1980년 이후 입적 전까지는 해외로 몸소 나아가 한국선을 널리 선양하였다. 특히 한국선의 해외 전법을 위한 구산의 선구적 노력을 통해 한국은 국제사회에 부상해 가는 위상과 함께 민족의 우수성과 문화의 수월성을 널리 과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한국불교사에서 정화불사의 주도자, 정혜결사의 계승자, 총림강원의 개설자, 칠바라밀의 제창자, 국제포교의 선구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고 있다. 구산은 지눌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의 조술자로서 그의 정신과 긴밀하게 연속하고 있다. 동시에 평생 ‘無字 화두’를 들고 수행하였던 그의 스승인 효봉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의 조술자로서 그의 정신과 친밀하게 해후하고 있다. 구산은 ‘참나’[眞我] 즉 ‘主人公’ 혹은 ‘眞心’ 또는 ‘眞性’을 찾기 위해서 화두선을 강조하였고, 간화선 수행의 세 가지 요체를 ‘大信大憤心’, ‘大勇猛心’, ‘大疑心’으로 새롭게 제시함으로써 간화선 계승자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동아시아 불교사상사의 주요한 개념인 ‘佛性’ 즉 ‘眞性’의 개념을 환기시키면서 진성은 영원히 신령스러운 존재이며 妙用이 많은 존재라고 강조하고 있다. 구산은 간화선을 닦는 방법으로써 혜능 이래 남종선의 가풍을 이은 지눌의 정혜쌍수 가풍을 원용하여 실천한 수행자였다. 그는 지눌과 같이 돈오-점수-체증의 체계를 또렷하게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그의 수증론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구산은 깨침[悟]과 닦음[修]의 두 축에서 볼 때 돈오점수 체계의 지지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한국불학사에서 상당법어와 수기설법의 재현자, 지눌과 효봉의 조술자, 간화선법의 계승자, 정혜쌍수의 실천자, 돈오점수의 지지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This is a study on the historical life and philosophical thinking of Ku-san Su-ryon(九山秀蓮, 1909~1983). Ku-san developed his own interpretation on Buddhism even though he succeeded the tradition of Ji-nul(知訥) and Hyo-bong(曉峰). As there happened a movement for purifing Korean Buddhist Order with banner that there couldn't be a married Buddhist priest in Buddhism in 1954, he came up to Seoul and held the National Buddhist Monk convention with organizing the committee for purification of Buddhist Order. Since then he turned in a petition written in his finger's blood, and played a leading role in purification movement of Korean Buddhist Order. He advocated the second movement of the association of meditation and wisdom(定慧結社) in order to inherit that of Ji-nul(知訥) and Hyo-bong(曉峰), with Song-guang-sa Tample as a center. And he opened up the way to the popular and practical Buddhism through the suggestion of seven paramita(七波羅蜜) which was the new interpretation of the practise of Bodhisattva in Mahayana Buddhism. He added ‘Man-hang(萬行) paramita’ to six paramita, and made people provide services on the day of ‘Man-hang(萬行) paramita’. So it was called ‘the voluntary service day'. Since finishing the summer varsa in 1973, Bul-il(佛日) International Seon Center had been opened by him, and 53 monks and nuns from 15 countries who became disciples of Ku-san could learn the way of Korean Seon. Moreover, he went abroad and spreaded Korean Seon from 1980 to 1983, last 4 years of his life. Through his leading effort for propagation of Korean Seon practice abroad, the superiority of Korean and its culture could be widely known in the world. So he could be called a pioneer of International missionary work in Korean Buddhist history. Ku-san was very titely connected with Ji-nul in the way of life and thinking, and also with Hyo-bong who had practiced with koan of Mu(無) all his life. He inherited the tradition of Ji-nul in the way of Koan-Seon(看話禪) which came from Hae-nung(慧能), the 6th patriarch. As the result, he was the follower of the system of Sudden-awakening and gradual-cultivating(頓悟漸修). Therefore, he has been a propagator of Ji-nul and Hyo-bong, a successor of Koan-Seon, a practicer of concurrent cultivation of meditation and wisdom(定慧雙修) and a supporter of Sudden- awakening and gradual-cultiva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