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진종=龍城震鍾=Yongsung Jinjong; 대은낭오=大隱朗旿; 대은율맥=大隱律脈=great secluded precept lineage; 고심여형=古心如馨=old mind like sound; 고심율맥=古心律脈=old mind precept lineage; 서상수계=瑞祥受戒=Susang ordination; 자서수계=自誓受戒=Self ordination; 금강계단=金剛戒壇=Diamond Stairway; 계첩문=戒牒文=precepts document; 동산혜일=東山慧日=Dongsan-Hyeil; 선곡=禪谷=Sungok; 재산=齋山=Jae mountain; 건백서=建白書=Proposition letter
摘要
본 논문은 백용성스님과 한국불교의 계율문제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특히 大隱律脈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먼저 용성스님이 대은율맥을 전승하게 된 인연부터 시작하여 계율중흥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까지 고찰하였다. 그가 19884년 21세의 나이로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선곡율사에게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음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이러한 전승은 단순히 수계의식만으로 傳承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護持하고 유포하며, 전수하여야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용성스님은 일제치하의 계율이 문란하고 많은 승려들이 帶妻와 破戒 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청정한 지계생활을 하였으며, 비구승으로서의 자존을 지켰다. 그는 자신이 전승한 대은계맥을 제자들에게 전하였다. 대표적으로는 幻鏡在修․東山慧日․檀庵敦和․古庵祥彦․東軒完圭․高峰泰秀․雲耕基弘․華山守玉․麟谷昌洙․慈雲盛祐 등이 있다. 물론 이외에도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자료가 밝혀진 분들이다. 뿐만 아니라 대은율맥을 전수하기 위해 수많은 곳에서 직 간접적으로 계율을 설하였으며, 전계화상으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1925년 10월 15일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계를 설하였다. 이 때 용성스님은 대승계율을 중흥시키기 위하여 「梵網經心地品金剛戒壇護戒牒文」을 玉板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4가지의 寶印도 만들었다. 이는 대은율맥의 전수를 위함이었을 것이다. 1926년 10월에는 함경북도 會寧 大興寺에서 금강계단을 개설하여 보살계를 설하는 전계화상이 되었다. 그리고 1929년 사월 초파일 佛誕節에 海印寺에서 說戒大會를 열었다. 1936년 11월 18일에는 東山慧日律師(1890~1965)에게 傳戒한 傳戒證을 전수하고 모든 일을 제자에게 맡겼다. 마지막으로 그가 입적할 무렵인 1940년 3월 「道峰山 望月寺 金剛戒壇護戒牒文」을 작성하여 수계를 주관하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당시 일부승려들이 대은율맥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여 萬下율사가 중국에 가서 고심율사의 맥을 전수해 오게 된다. 현재는 이 율맥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大隱율맥이나 중국의 古心율맥 모두가 瑞祥受戒로 인한 것이므로 사대주의 사상에 물들인 일부 승려들에 의해 한국의 自主的인 正統戒脈이 혼란스러워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율맥은 어디까지나 잘 호지하였을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萬下派의 전계화상 중 일부는 帶妻를 하여 破戒하였으므로 전승할 수 있는 자격이 상실되었다. 그러나 용성스님의 대은율맥은 청정히 지켜져 오고 있음으로 그 가치가 더 있다고 보여 진다. 무엇보다 서상수계의 교리적 연원은 『梵網經』을 비롯하여 여러 경전에서 설하고 있으며, 부처님 당시부터 전해져 오고 있었던 방법이다. 용성스님에게 전계한 禪谷율사의 행적이 불분명하다보니 齋山스님과 동일인물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용성스님은 한국 전통불교의 정통율맥을 중흥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총독부에 2차에 걸친 建白書를 제출하기도 하였고, 당시 帶妻 食肉飮酒의 타락한 불교를 거침없이 꾸짖으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梵網經』을 한글로 번역하여 계율의 중흥을 기원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1960년대에 한국불교는 정화운동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의 재흥에 기초를 마련하였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한 가지 애석한 것은 그가 주창하였던 우리나라 정통의 대은율맥은 오늘날 사라져가고, 중국의 고심율맥이 성행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고심율맥을 계승한 일부의 전계화상 중에는 帶妻를 하였으므로 그 율맥의 정통성은 이미 사라졌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This dissertation studies on Baek Yong Sung Sunim and the issue of Korean Buddhism Precepts. Especially, this research study focused on, what so called, the great secluded precept lineage. First of all, this dissertation study starts from the research investigation on the Yong Sung Sunim’s cause in receiving the great secluded precept lineage to his endless efforts for Korean Buddhism Precepts Restoration. The first phase of receiving the great secluded precept lineage began with his acceptance of the bhiku precepts as well as the bodhisattva precepts from Sungok precept defensor at the diamond stairway in the Tongdo Temple when he was 21 years old in 1984. True receivement of the Buddhism precept lineage would not be accomplished with a simple Buddhist ceremony for ordaining the priesthood. It also requires sincere efforts in maintaining, circulating and transmitting the true essence of the precepts. Through out his priest life, Yong Sung Sunim always lived with clear precepts and kept a pride of bhiku priest although many monks took wifes and lived with the precept-broken life und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hen Korean Buddhism precepts were corrupted. Yong Sung Sunim transmitted the great secluded precept lineage to his disciples. For example, as his disciples, there were Hwangyung-Jaesu sunim, Dongsan-Hyeil sunim, Danam-Donwha sunim, Goam-Sangahn sunim, Donghun-woankyu sunim, Gobong-Taesu sunim, Wounkyung-Gyhhong sunim, Whasan-Suok sunim, Ingog-Changsu sunim, Jawoun-Sungwoo sunim. In addition to them, we expect there were many other disciples. The above mentioned disciples, however, could be discovered by historical data. Yong Sung Sunim also had lots of lectures for spreading out the great secluded precept lineage directly as well as indirectly in various places. As a precept defensor monk, he made a great effort for his self-concious role. He had a speech on the precepts at the diamond stairway in the Hyoein Temple on the October 15thof 1925. At that time, Yong Sung Sunim wrote the Buddhism precept scripts, what so called as, Bumangkyung simjipum gumgangkye - danhokye - chupmun, on a jade plate. Also, he made four types of treasure seals. These events were happened for the tr
目次
I. 머리말 82 II. 瑞祥受戒 大隱律脈의 傳承 83 III. 직접 수계를 받은 제자 85 IV. 大隱律脈의 傳授 95 V. 大隱律脈의 정통성과 瑞祥受戒의 문제 104 VI. 禪谷律師의 행적에 관한 의문점 110 VII. 한국불교 계율의 중흥 114 VIII. 맺음말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