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当代中国佛教界的中流砥柱 - 净慧大和尚=The mainstay of contemporary Chinese Buddhist community - The old monk Jinghui=당대 중국불교계의 태두 - 정혜대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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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者 |
朴永煥 =박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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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處題名 |
대각사상=Maha Bodhi Thought=大覺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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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期 | v.21 n.0 운허의 역경관 |
出版日期 | 2014.06 |
頁次 | 175 - 189 |
出版者 | 대각사상연구원=Institute of Maha Bodhi Thought |
出版者網址 |
http://www.taega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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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地 | Seoul, Korea [首爾, 韓國] |
資料類型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使用語言 | 中文=Chinese |
附註項 | 저자정보: 東國大學校(首爾校區)中文系教授 |
關鍵詞 | 净慧=Jinghui=정혜선사; 生活禅=Life Zen=생활선; 柏林禅寺=백림선사=Bolin Zen temple; 四祖寺=Sizu temple=사조사; 学术弘法=학술홍법=Spreading Buddhism through academic; 培养人才=인재양성=Educating talents; 厚德载物=후덕재물=Social commitment |
摘要 | 當代中國佛教界里凈慧老和尚是一位關鍵性的人物。不僅繼承發展了虛雲老和尚的法脈,而且發揚光大了太虛大師主張的“人間佛教”理念,大力倡導以“覺悟人性、奉獻人性”為宗旨的“生活禪”、 為使當代中國佛教進入前所未有的輝煌發展方面做出了重要的貢獻。凈慧老和尚十四歲發願出家,住持柏林禪寺期間,即以推動“生活禪”為己任,主張“在生活中修行,在修行中生活”。走過半世紀,凈慧老和尚雖然歷經被劃為“右派”,並接受下鄉勞動改造等磨難,然而初心不變。改革開放以來,大師重新回歸佛門,他創辦生活禪夏令營,培養僧才,覆興中國各地祖師道場,為續佛慧命遍撒菩提種子;撰文著述,創辦佛教雜志,孜孜不倦於佛教文教事業,為現代中國佛教注入了蓬勃的新動力。總之,凈慧老和尚是當代中國人間佛教思想重要的實踐者和推動者,我們可以將他的貢獻歸納為以下幾點:“振興佛學,學術弘法”,“納入新血,培養人才”,“生活禪風,人間佛教”,“上善若水,厚德載物”等。
The old monk Jinghui is one of the key men in contemporary Chinese Buddhist circle. He did not only develop the spread of the old monk Xuyun’s school but also carried forward the ethos of “Human Buddhism” maintained by the great master Taixu and strongly advocated “Life Zen”that aims for “the consciousness of humanity and the contribution of humanity”. He had made great contribution to make the contemporary Chinese Buddhism come into a splendid phase of development never seen before. The old monk Jinghui made up his mind to be a monk at 14 years old and made it his duty to promote “Life Zen” and carried forward the ethos of “Practicing Zen in life and Living in Zen practice” during the period of being the abbot in Bolin Zen temple. After passing half of a century, although the old monk Jinghui had experienced the ordeals of being regarded as the Rightist and underwent reform through labor in countryside, he never changed his original mind. Since the reform and open up, the master went back to the Buddhism and started “Life Zen” summer camp, educated Buddhist talents, revived patriarch rites all over the country to sow seeds of Bodhi for continuing Buddhist wisdom, wrote essays, established Buddhist magazines, persevered in Buddhist cultural and educational work, and poured new power into the modern Chinese Buddhism. In a word, the old monk Jinghui is an important practitioner and facilitator of the contemporary Chinese Human Buddhism thought. We can sum up his contribution as follows: “Revitalizing Buddhism, Spreading Buddhism through academic”, “Bringing into new blood, Educating talents”, “Life Zen style, Human Buddhism”,“As good as water, Social commitment”, etc.
정혜(净慧)선사(1933-2013)는 현대중국불교사의 산증인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21세기 중국불교부흥과 발전의 토대를 확립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선사는 20세기 초 중국불교의 발전을 주도했던 허운노화상의 법맥을 잇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허대사가 주창한 ‘인간불교’의 이념을 계승하여 “인간성의 깨달음, 인간성의 봉헌”을 종지로 하는 “생활선”사상을 정립하였다. 14세에 우한(武漢) 삼불사(三佛寺)로 출가하였던 선사는 그의 나이 18세(1951년)에 현대중국불교사의 비극이었던 “운문사변”의 와중에 운문사에서 허운노화상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아 불문에 정식으로 귀의하였다. 그러나 1962년 비이성적인 홍색광풍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우파로 몰려 불교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북경, 광동, 호북성 등지에서 혹독한 노동을 통한 사상개조를 받았으며, 문화대혁명의 10년 동란이 끝난 뒤, 개혁개방의 초기인 1979년에서야 비로소 다시 불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88년대부터 조주선의 발흥지인 하북성 백림선사의 주지로 취임하면서 백림선사의 중창을 시작하면서 현대중국선종 중흥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생활선”이념을 확립하여 2013년 입적 때까지 반평생동안 “생활 속에서의 수행과 수행 속에서의 생활”을 적극 창도하면서 피동적인 위치에 있던 중국불교를 능동적인 위치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확립하였다. 더욱 소중한 것은 중국 최초로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생활선 여름캠프”를 매년 개최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현대 중국불학발전의 토대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학식을 갖춘 뛰어난 제자들을 양성하여 현대중국불교부흥의 기틀을 다졌다. 2003년 조주도량을 완공하고 백림선사 방장직을 제자인 明海법사에게 물려준 그는 2004년부터 호북성 황매로 내려온다. 정혜선사는 매년 “선문화 여름캠프”를 통한 홍법활동을 적극 추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4조사, 노조사, 옥천사 등의 중건의 책임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무량한 공덕을 세웠다. 이뿐만이 아니다. 특별히 그는 학술과 예술을 통한 홍법을 매우 중시하였다. 2010년부터 매년 북쪽에서 “하북선문화논단”, 남쪽에서 “황매선문화고봉논단”이라는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여 “남황매선, 북하북선”이라는 현대 중국불학연구중심지로 발전 시켰다. 매번 참가학자가 백여명이 넘어서는 중국 최대규모의 정기적인 국제학술회의를 통해서 국내외의 유명학자들과 신진 학자들이 서로 절차탁마할 수 있는 교류의 장소를 건립하였다. 이외 육조혜능스님의 일대기를 중국 전통예술인 황매희와 결합시켜 현대 중국 전통극을 통한 홍법을 실현하고 있는 것도 정혜선사의 지대한 공덕이다. 2013년 4월 20일 새벽 6시를 넘어 설 때 정혜선사는 호북성 사조사에서 세수 81세, 승랍 67세로 파란만장했던 이승과의 인연을 다하고 입적하였다. 정혜선사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생활선풍, 인간불교”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일생동안 노력하였다. 특히 “불학의 진흥과 학술을 통한 홍법”을 강조하였고, “새로운 피의 수혈을 통한 인재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민중에 대한 자선 구제에도 노력을 기울여서 “물과 같은 최상의 선, 만물을 포용하는 품덕”의 실천을 위해 노력한 진정한 불제자였던 것이다. |
目次 | 一. 生平 179
二. 振興佛學,學術弘法 180 III. 纳入新血,培養人才 181 四. 生活禪風,人間佛教 182 五. 上善若水,厚德載物 183 六. 結语 185 |
ISSN | 12291080 (P) |
點閱次數 | 144 |
建檔日期 | 2023.05.13 |
更新日期 | 2023.0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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