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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비보사상(裨補思想)과 한양 비보사찰(裨補寺刹) - 사탑(寺塔)의 비보(裨補)를 통한 국도(國都)의 명당화(明堂化), 한국불교사 기술을 위한 몇 가지 과제=National defect-complementation thought and defect-complementing temples in Hanyang : Making a capital Bright Place by complementing weak spots with Buddhist temples and monuments, several task for describe of history of Korean Buddhism
作者 고영섭 (著)=Ko, Young-seop (au.)
出處題名 동아시아불교문화=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卷期v.48 n.0
出版日期2021.12
頁次253 - 296
出版者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The Association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出版者網址 http://www.easternasia.kr/
出版地Busan, Korea [釜山, 韓國]
資料類型期刊論文=Journal Article
使用語言韓文=Korean
附註項저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關鍵詞裨補; 道詵= Dosun; 無學= Moohak; 身土不二; 諸敎 包攝; 觀地相法; 國域鎭護說; reconciliation and unity of all teachings; Defect-complementation thought; non-dualism between humanity and the land; national defect-complementation thought; Method of Observing Geographical Features
摘要이 논문은 국도 한양이 명당화 될 수 있었던 근거가 국가 비보사상에 의거해 창사된 한양의 비보사찰들에 의해서였음을 밝힌 글이다. ‘부족한 대지에 기운을 보태고 두터운 사탑의 공덕을 채운다’는 비보(裨補)사상은 불경의 신토불이(身土不二) 교설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일부 선사들은 신토불이 교설에다 풍수 이론을 원용하였고 이것은 몇몇 고승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리하여 비보사상은 ‘육신과 국토가 둘이 아니다’는 신토불이 교설과 지령(地靈) 신앙 등을 통섭하는 밀교 경론의 제교 이론 포섭의 법용으로 활용되어 왔다. 신라의 혜철(惠哲)은 곡성 동리산의 대안사지(大安寺地)가 밀교의 관지상법(觀地相法)의 내용에 부합하고 있으며 삼한의 승지가 될 수 있는 지세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혜철의 제자였던 도선은 선사로서 평소에 늘 선리 참구(禪理參究)에 몰두 했으며 “절을 세우고 탑을 세워 얻어진 국가적 이익과 공덕이 선리(禪理)의 정밀한 깊이[精奧]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신앙적 본질을 선법에 두었던 도선(道詵) 선사를 비롯하여 고려의 여철, 의천, 태고, 조선의 무학 등 불교의 고승들은 비보사상에 입각하여 개성과 남경 즉 양주의 권역인 한양으로의 전도와 천도의 기반을 제시하였다. 이들은 국토 전체를 하나의 완벽한 유기체 또는 만다라(曼茶羅)로 보고 위치나 방위 및 산천의 지세에 따라 알맞은 곳을 택하여 절·탑·불상·부도(당간)를 세우고 여러 보살들에게 기원함으로써 개인과 국가의 재난을 물리치고자 국역진호설(國域鎭護說)을 시설하였다. 조선은 도선의 비보사상을 계승한 무학의 국가 비보사상에 의해 한양을 수도로 전도(奠都)하였고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遷都)하였다. 하지만 인왕산을 주산으로 동향의 궁궐을 짓고 백악을 좌청룡으로 목멱산을 우백호로 제시한 무학과 달리 백악산을 주산으로 한 남면의 궁궐을 짓고 낙타산을 좌청룡으로 인왕산을 우백호로 주장한 정도전의 기획을 태조 이성계가 수용함으로써 이후 정도전의 기획대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왕사 무학은 정도전의 거부로 인한 결핍의 부분을 몇 가지 비보(裨補) 작업을 통해 보완함으로써 국도의 명당화라는 대의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한양의 내사산의 하나인 인왕산에 인수사, 복세암, 금강굴, 니사(尼社, 尼舍), 나한당 등과 외사산의 하나인 관악산/삼성산/호압산에 관악사, 연주암, 염불사, 관음사, 삼막사, 호압사, 사자암 등의 비보사찰을 적극적으로 세움으로써 지기(地氣)의 결함과 지덕(地德)의 부족을 보완할 수 있게 하였다. 따라서 현교의 신토불이 교설과 밀교의 제교 포섭 이론의 법용에 의거한 비보사상에 근거해 창사한 이들 사찰들은 수도 한양을 외호할 수 있었다. 당시의 백성들 또한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도 이들 비보사찰에 의지해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국도 한양은 국가 비보사상에 의해 창건된 비보사찰들을 통해 명당화 할 수 있었으며 나라의 수도로서 전국을 통솔할 수 있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reason the capital of Chosun, Hanyang was successfully acknowledged as a Bright Place from a Feng-Shui point of view was Buddhist temples and monuments that were built around the capital based on defect-complementation thought. Defect-complementation thought claims that the weak energy of the land needs to be complemented by Buddhist temples and stupas that are filled with good energy of merit and virtue. This agrees with Buddhist non-dualism that considers humanity and the land not separate. Therefore, in addition to this Buddhist non-dualism, some Seon masters applied Feng-Shui, and this combination became an established Buddhist tradition followed by historical Buddhist monks who successfully inherited this thought. In this way, defect-complementation thought was established based on both the Buddhist non-dualistic view that claims “human beings are not separate from the land” and Feng-Shui’s view that regards the Earth Spirit as vital. Further, Ven. Hyechul of Silla, who had a good knowledge of Feng-Shui, knew that the site of the Daean temple on Mt. Dong-ri in Goksung was in good condition to become the capital of the Three Han states, and it also met the criteria of the Method of Observing Geographical Features in esoteric Buddhism. Dosun, who was a disciple of Hyechul, was an earnest practitioner of Seon Buddhism, and claimed, “The great national benefit and virtue that can be earned by building temples and statues in the country does not reach the level of benefit and virtue that one man can have by awakening to the truth of Seon.” He was an enthusiastic practitioner of Seon Buddhism, and along with Yeochul, Uichun, Taego of Goryo, and Moohak of Chosun, he wa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ost prominent monks who can give guidance to the country where the capital of the country should be placed. Dosun’s view of the country’s land was that the land was like a living body, or a Mandara, and he recommended placing Buddhist temples, and stupas on spots as necessary depending on geographical features and directions. He taught that the country and people can be well-protected by placing sacred Buddhist buildings and monuments in the right places and praying to them properly. Chosun transferred the capital from Gaesung to Hanyang according to Moohak’s defect-complementation thought, which had been handed down from Dosun. However, in deciding the specific spot for the palace, there was a small difference between Moohak and Dojun Jung. Moohak’s plan was to place the palace faci
目次Ⅰ. 서론 257

Ⅱ. 국가 비보사상의 경론적 근거 260

Ⅲ. 한양 전도와 국가 비보사상의 투영 268

Ⅳ. 한양 내사산 외사산의 비보사찰 276

Ⅴ. 裨補寺刹 창사와 國域鎭護의 배가 287

Ⅵ. 결론 289
ISSN27140938 (P); 27140946 (E)
DOI 10.21718/EABC.2021.48.09
點閱次數266
建檔日期2023.06.22
更新日期20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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