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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 의상의 화엄은 성기사상이 아닌가? - ‘의상 화엄사상의 성기적 이해에 대한 재검토’의 비판적 고찰=Is Not Busuk Uisang’s Huayan the ideology of arising from the original nature? - Critical Review of the “reexamination on the Uisang’s understanding on Huayan thought as ‘arising from the original nature’ -
作者 고영섭 (著)=Ko, Young-seop (au.)
出處題名 동아시아불교문화=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卷期v.44 n.0
出版日期2020.12
頁次193 - 227
出版者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The Association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出版者網址 http://www.easternasia.kr/
出版地Busan, Korea [釜山, 韓國]
資料類型期刊論文=Journal Article
使用語言韓文=Korean
附註項저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關鍵詞법성=Dharma-nature; 성기; 법성성기; 연기사상; 사사무애; 성기사상; 중도사상=middle-way ideology; arising from the original nature; ideology of dependent origination; nonobstruction among individual phenomena; the ideology of “arising from the original nature
摘要이 논문은 부석 의상(浮石義湘, 625~702)의 유학로와 화엄학 지형의 형성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이 과정에서 의상 화엄사상의 성기적 이해에 대한 재검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의상 화엄사상이 중도사상 혹은 성기사상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유가계 사찰이었던 황복사에서 출가했던 의상은 두 차례의 유학 시도 끝에 원효와 헤어져 서해의 당항진에 다다랐다. 그는 경기도 화성시의 남양만에 자리한 당은포와 산동반도의 등주지방을 잇는 항로를 이용하여 입당하려고 당항진 즉 당은포로 나아갔던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신라와 당나라 북쪽 해로의 최단거리는 산동지방의 등주였으며 여기에는 문등현 관내의 성산포(成山浦), 산동반도의 용구시에 해당하는 황현포구(黃縣浦口), 적산포(赤山浦), 유산포(乳山浦) 등의 좋은 항구들이 있었다. 이곳 등주의 관내에 드나들던 신라의 견당사들은 지금의 산동반도 용구시(龍口市)에 해당하는 황현포구(黃縣 浦口)를 주로 이용하였다. 현장과의 인연이 어긋난 뒤 여러 곳을 노닐었던 의상은 지상사(至相寺)의 지엄을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8년간 화엄을 수학하였다. 이후 그로부터 수학한 의상은 ‘문장 이해의 뛰어남’이라는 ‘문지’(文持)를 받은 법장(643~712)과 달리 ‘의미 파악의 뛰어남’이라는 ‘의지’(義持)의 별호를 받았다. ‘문지’와 ‘의지’는 단지 두 사람의 개성을 드러내는 별호에 머무르지 않고 당대 화엄과 신라 화엄의 특징을 담고 있다. 붓다의 중도사상은 연기, 무자성, 공성을 넘어 자비로 확장되어 갔으며 대승불교에서는 제일의공으로서의 무분별지로 거듭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붓다의 중도는 법성이며 법성은 성기이며 성기는 법성의 성기화(性起化)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의상은 법성성기의 개념을 통해 자신의 화엄사상을 구축하였다. 의상이 법성과 성기와 법성성기를 주장한 것은 ‘여래성’과 ‘현현’과 ‘여래성의 현현’이 하나임을 역설하기 위해서였다. 법성이 보리심 속에 나타나 있는 ‘기’(起)라면 이것은 불기(不起)의 기(起)이므로 법성은 역동적인 존재로 이해된다. 바로 이 법성이 성기화 되어 법성성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법성성기의 사상에 입각하여 의상은 성기취입(性起趣入)적인 횡진법계관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법장의 연기건립(緣起建立)적인 수진법계관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의상은 『일승법계도』와 그의 강론을 기록한『화엄경문답』 즉『추동기』에서 중도사상 즉 성기사상의 관점에서 자신이 구축한 화엄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의상의 제자들이 보여준 해석에는 의상과 법장 및 연기계 화엄해석이 뒤섞여 있을지라도 엄밀하게 분석해 보면 의상계 제자들은 법장 및 연기계화엄해석과는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의상의 화엄사상은 법장 및 연기계의 사사무애 또는 연기사상과 달리 중도사상 혹은 성기사상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This paper examines the character of Busuk Uisang’s (625-702) Route to China and Huayan ideology. By reexamining his thoughts, we were able to verify that his take on Huayan ideology is both a middle-way ideology and “arising from original nature.” Busuk Uisang became a monk in the Hwangbok temple, which was a lineage of Confucianism, and as a result of two attempts to study abroad with Wonhyo(617~686), he arrived at port Danghang, where vessels leave for China. It seems that he planned to take the Danghang Korea-Dungjoo China route. Dungjoo province in China had good ports like Sungsan, Hwanghyun, Juksan, and Yoosan. However, the shortest northern path from Korea to China was the Danghang-Dungjoo route. It is known that diplomats of Silla usually used the port at Hwanghyun, which is now Youngu-City in China. Uisang, who originally expected to learn from Xuanzang for scholastic achievement, failed to meet him; he eventually went to Jisang temple and studied Huayan ideology for eight years under the guidance of Master Zhiyan. As a result of hard study, he received the pen name of “excellency in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sutra,” while Fazang received the pen name of “excellency in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context,” from Zhiyan. These pen names not only show the characters of these two people but also represent the character of Huayan ideology in Tang China, and Silla in the future. The middle-way ideology of Buddha is the wisdom that transcends two opposite extremes, and this middle-way ideology has spread over a wide area. This middle-way ideology has further developed into the ideology of dependent origination, asvabhāva (no self-nature), emptiness, and compassion. Especially in the case of Mahāyāna Buddhism, it has developed into the ideology of non-conceptualizing awareness, which means emptiness beyond thought. As a result, the concept of the Buddhist middle-way has developed into the concept of Dharma-nature, and this Dharma-nature means “arising from the original nature” in the Huayan school. It is this concept of “arising from the original nature” that is the main characteristic of Uisang’s Huayan ideology. The reason Uisang thought that Dharma-nature and “arising from the original nature” is the same was that the nature of Dharma and its manifestation cannot be divided. If Dharma-nature is same as the act of “arising from the original nature,” this “arising” is an act of “arising without arising” which makes the Dharma-nature not a static entity but a dynamic entity. This is the concept of Uisang’s Huayan ideology, in which Dharma-nature is alrea
目次Ⅰ. 서론 195

Ⅱ. 당나라 유학의 시말 197

Ⅲ. 현장 유식에서 지엄 화엄의 수학 202

Ⅳ. 중도사상 즉 성기사상의 확립 210
Ⅴ. 의상 화엄학의 지형과 특징 217

Ⅵ. 결론 221
ISSN27140938 (P); 27140946 (E)
DOI 10.21718/EABC.2020.44.07
點閱次數135
建檔日期2023.06.24
更新日期20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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