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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불교계 동향과 송광사의 위상 -- 王室願堂 설치를 중심으로=Songgwang Temple(松廣寺) and Buddhism in 19th Century during the Joseon Dynasty
作者 탁효정 (著)=Tak, Hyo-jeong (au.)
出處題名 보조사상=普照思想=Journal of Bojo Jinul's Thought
卷期v.45 n.0
出版日期2016.02
頁次137 - 171
出版者普照思想研究院
出版地Korea [韓國]
資料類型期刊論文=Journal Article
使用語言韓文=Korean
附註項저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關鍵詞Songgwang Temple=松廣寺; 朝鮮佛敎; Royal Buddhist Shrines=王室願堂; buddhism; 王室願堂; 毓祥宮願堂; 祝聖殿; 耆老所願堂; 僧寶寺刹
摘要19세기는 조선 불교계가 가장 큰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19세기 조선 왕조의 사회경제적 모순이 불교계로 전가되었기 때문이었다. 三政이 문란해지고 국가경제가 피폐해지면서 조선 왕조는 조세 부족분의 일부를 승역과 사찰 잡역으로 충당하고자 하였다. 사찰에 대한 경제적 수탈이 심각해지면서 전국에 폐사하는 사찰들이 속출했고, 대형 사찰들조차 존폐 위기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같은 19세기의 위기상황에서도 불교계는 교단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전국 사찰들은 결사와 염불회를 결성해 불교 진흥을 도모했으며, 사찰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명산대찰들이 寺勢를 보전할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방법은 바로 왕실원당의 설치였다. 왕실원당으로 지정된 사찰에는 왕실의 막중한 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별도의 잡역 부과가 금지되었으며, 寺位田 등의 경제적 혜택이 주어졌다. 호남을 대표하는 사찰인 송광사는 19세기 중반 고종, 민비, 순종 등 三殿의 祝願堂으로 지정된데 이어 20세기초에 고종의 기로소원당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송광사의 명성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송광사 측의 적극적인 유치 노력이 있었다. 송광사는 조선초부터 불교계를 대표하는 사찰로 국가적인 비호를 받았고, 조선후기까지 꾸준히 왕실의 원당으로 지정되는 등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말에 이르러 대화재가 발발하고 사찰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에서도 왕실원당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데에는 송광사 승려 용운의 공로가 매우 컸다. 용운은 1842년 송광사에 화재가 발생해 대부분의 전각이 전소되었을 당시 중창불사를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용운은 순천부사 이범진을 통해 왕실원당 유치작업을 벌였고, 1886년에 고종과, 민비, 세자의 원당인 축성전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송광사에 부과되던 각종 잡역이 크게 줄어들었고 왕실로부터 불공 비용 명목으로 전답을 하사받는 등의 경제적 혜택을 얻게 되었다. 19세기 송광사는 조선사회의 혼란, 불교계의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사찰의 대형 참화까지 발생하는 위기를 맞이했지만, 승려들의 적극적인 중창 의지와 왕실원당 유치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In 18th century, when it generally grew in the area of society, economics and culture, also has grown up Buddhism during the Joseon Dynasty. Temples which had been burned out during the two great wars, were restored and bases for Buddhism were expanded. But Joseon Dynasty in 19th century was caught in a vicious circle that monopolization of power and commercial business caused to breakdown of civil economy and civil riot. It was in 19th century when had been the one of the most difficult time in Buddhism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was not simply caused by political suppression, social and economical absurdity in the Joseon Dynasty was transferred to Buddhism. In spite of those difficulties, Buddhism in 19th century exerted oneself to keep its livelihood and to promote development of temples. The simplest way to preserve power and economy of celebrated temples was appointed to the Royal Buddhist Shrines(王室願堂). The Royal Buddhist Shrines were exempted from paying taxes and financially benefited from the royal family. Also were those evaded from public service. Songgwang Temple(松廣寺) was one of the Royal Buddhist Shrines from the beginning of the Joseon Dynasty. It was burned down in 1842 and reconstructed by chief monk Yongun in Songgwang Temple. In 1902 at the time of King Gojong it was also appointed to the Royal Buddhist Shrines for commemoration of king's good health and longevity. Songgwang Temple had been closely connected with the royal family in the Joseon Dynasty. And it invited actively various kinds of the Royal Buddhist Shrines.
目次I. 머리말 141
II. 19세기 조선 사회와 불교계 143
1) 19세기 조선의 위기와 불교계의 실태 143
2) 위기 극복을 위한 불교계의 대응 149
III. 송광사의 19세기 현황과 왕실원당 설치 153
1) 부휴계 종찰로서의 명맥 153
2) 승보사찰의 위상 선양 155
3) 왕실원당 설치와 운영 158
IV.맺음말 165
ISSN12297968 (P)
DOIhttp://doi.org/10.22859/bojoss.2016..45.004
點閱次數73
建檔日期2023.01.28
更新日期202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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