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오대산(五臺山)의 개창자는 자장(慈藏)이지만, 오대산 신앙을확립하는 인물은 통일신라 초기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이다. 그런데 이들 기록에는 완전히 정리되지 못한 문제점이 존재한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점 중 은거와 관련해서 발견되는 총 4가지를 해소하고자 한 것이다. 첫째, 자장의 계승자로 『삼국유사』 「臺山五萬眞身」에는, 보천·효명의 앞에 신의(信義)·유연(有緣)이 등장하는 문제. 이는 후일 오대산에전해지던 두 가지의 별개 문헌에 의한 것으로, 여기에는 개창자인자장을 보충하려는 필연성이 존재함을 밝혔다. 둘째, 정신(淨神)은 보천의 다른 이름인가? 보천의 부왕(父王)인가?의 문제. 이는 민지(閔漬)의 『五臺山事蹟記』 정리 결과를 중심으로, 다수의 설인 ‘정신=보천’이 타당함을 분명히 했다. 셋째, 보천과 효명의 오대산 은거(隱居) 이유. 본고에서는 이들이강릉(江陵)의 세헌각간(世獻角干) 집에서 하루만 유숙하는 반면, 성오평(省烏坪)에서는 여러 날을 지내는 것 등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서 이들의 은거가 경주에서의 왕권 다툼과 관련해, 세헌각간에게 의탁하는 것이 실패한 뒤에 이루어진 것임을 밝혔다. 넷째, 보천과 효명의 은거가 647년에 이루어졌다는 기록의 문제. 본고에서는 이 연대 착오가 자장과 보천·효명을 연결하려는 후대 오대산 측의 의도된 왜곡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Jajang (慈藏) founded the Odaesan Faith in the Silla Dynasty, while Bocheon (寶川) and Hyomyeong (孝明) were instrumental in establishing the faith during the early days of Unified Silla. However, there are inconsistencies with the organization of the records from this time. Firstly, as the successors to Jajang, Sineui (信義) and Yuyeon (有緣) are mentioned before Bocheon and Hyomyeong in (臺山五萬眞身) of The History of Three Kingdoms. This was based on two separate documents that had been later passed from the Odaesan. From my own research, I demonstrate here that this was necessary to supplement the founder, Jajang. Secondly, why did Bocheon and Hyomyeong come to Odaesan? It was noticed that they stayed just one day at the house of Seheon Gakheon (世獻角干) in Gangneung but several days at Seongopyeong (省烏坪). Through these records, it is clear that their hermit life was caused by an unsuccessful stay at the house of Seheon Gakheonin due to the dispute over the kingship in Gyeongju.
目次
Ⅰ. 서론 155 Ⅱ. 오대산(불교)의 중창 순서와 보천(寶川)의 명칭 문제 156 1. 「臺山五萬眞身」 속 신의(信義)·유연(有緣) 문제와 타당성 156 2. 보천과 정신(淨神)의 명칭 관계 정리 160 Ⅲ. 보천과 효명의 오대산 은거 이유와 문제점 168 1. 오대산 은거의 배경과 내용 분석 168 2. 은거 일자의 모순과 가능한 해법 172 Ⅳ. 결론 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