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경기도 이천 北嶽寺(映月庵)의 역사와 인물=History and People of Bukaksa(Youngwolam) in Gyeongido Icheon |
|
|
|
作者 |
高榮燮 (著)=Ko, Young-seop (au.)
|
出處題名 |
한국불교학=韓國佛教學
|
卷期 | v.67 n.0 |
出版日期 | 2013.10.31 |
頁次 | 295 - 332 |
出版者 | 한국불교학회 |
出版者網址 |
http://ikabs.org/
|
出版地 | Korea [韓國] |
資料類型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使用語言 | 韓文=Korean |
附註項 | 저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
關鍵詞 | 북악사=Bukaksa; 영월암=Youngwolam; 풍영루=Pungyoungru; 마애여래입상=carved stone Buddha statue; 의상=Uisang; 산악=Sanak; 나옹=Naong; 낭규=Nanggyu; 보은=Boeun; 청일=Cheongil; 퇴경=Doegyung; 계운=Gyeun |
摘要 | 이 논문은 경기 남부지역의 대표적 사찰이었던 이천 북악사(영월암)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경기 남부지역 불교 역사와 문화 중이천 지역의 불교 역사 문화는 북악산 즉 설봉산을 구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 산의 중심에 자리한 북악사는 신라 문무왕 때 義湘이 초창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신라 말 고려 초기에는 석불 대좌와 연화 광배 및 삼층 석탑이 조성되었다. 고려 중기에는 山岳이 마애여래입상을 조성하여 유가업(瑜伽/法相業)의 성지가 되어 왔다. 고려 후기에는 懶翁이 마애여래입상 앞에서 지장기도를 하여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함으로써 지장기도 도량이되어 왔다. 조선 중기의 임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사찰이 쇠락하자 조선 후기는 영조 때의 映月朗奎가 낡은 절을 重修한 이후 북악사는 밀교와 의례를 아우른 정토계 신앙의 사찰로 자리하였다. 대한시대 이후 북악사(영월암)는 미륵신앙과 지장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오고 있다. 한편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洪翰周의 시(1858년작)에서는 북악사를 영월암이라고 부르고 있어 당시에는 이미 영월암으로도 불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천부읍지』(1871)에는 ‘북악사’라고 되어 있지만, 『이천읍지』 내의 지도인 「경기좌도이천부일경지도」(1872)에는 ‘영월암’이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절에 대해 관찬 사서(지리지)에서는 임란과 호란 이전까지는 북악사라 고 적어 왔으며, 영월 낭규에 의해 ‘북악사’로 중창되었지만 사찬 사서(지리지)에서는 이 절을 중창한 영월의 위상을 의식하여 속칭 혹은 통칭 ‘영월암’으로 불러왔음을 알 수 있다. 해서 영월 낭규의 입적 뒤 19세기 중엽 이후부터 사명은 ‘映月庵’으로도 불렸으며 1899년 이후 폐사된 뒤에는 普恩에 의해 중건(1911)되면서 비로소 공식적으로 ‘영월암’으로 명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영월암은 이전부터 이 지역 역사 문화의 주축인 불교와 유교 교섭의 한복판에 있던 한양 주변의 본사인 봉은사와 경기도의 본사인 龍珠寺의 말사로서 자리해왔다. 이후 영월암은 徐昌壽, 李春應, 劉信庵, 朴春根, 曺彦祐 주지 등에 의해 사격이 이어져 왔다. 그 이후 쇠락한 법당 중창을 계획했던 金明七(晴一) 주지 이래 영월암은 金海翁, 계운 성련, 退耕相老, 김덕현, 송정해, 법정, 普門 주지 등에 의해 오늘의 사격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이천 영월암과 전통문화 공간의 활용 방안의 급선무는 전통문화의 상징이자 현대문화의 구심인 불교문화가 주도해 나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먼저 종교적 기능이 살아있고 문화적 기능이 활발발한 영월암이 북악사의 사명을 복원하고 사격을 드높여 불교문화의 구심으로서 이천지역 문화의 원심을 이끌어 가는 장치를 확보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불교와 유교를 배경으로 하는 전통인물을 찾아내어 역할모델로 삼고 도자 장인과 그림 예인들을 찾아내어 현대인물을 내세우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체험 등을 통해 전통문화의 현대적 해석을 도모해 갈 뿐만 아니라 이천 지역의 상징적 브랜드인 도자기를 현대문화에 접목하여 실용과 예술의 통로를 모색해 가야만 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search for the history and people of Icheon Bukaksa(Youngwolam), which was a representative temple of southern Gyeonggi-do area. Among the Buddhist history and culture of southern Gyeonggi-do area, Buddhist history and culture of Icheon area was displayed around Bukaksan(namely, Seolbongsan). It has been known that Bukaksa, which was located in the center of this mountain, was constructed by Uisang at the reign of King Munmu of Silla. During the period from the United Silla age to early Koryeo age, stone Buddha stand, lotus aureole and 3-story pagoda were constructed. In mid Koryeo age, Sanak constructed carved stone Buddha statue and it became the shrine of Yuga School. In late Koryeo age, Naong did to pray for Ti-tsang in front of carved stone Buddha statue and cured the disease of his mother so it became the place of to pray for Ti-tsang. As temple falls behind while experiencing Japanese invasion and Chinese invasion in mid Joseon Dynasty, Youngwol Nanggyu reconstructed old temple in the reign of King Youngjo. After that, Bukaksa was the temple of pure land belief covering Esoteric Buddhism and ceremony. In the poem of Hong Han-Ju who was a scholar in late Joseon Dynasty, Bukaksa was called Youngwolam so we can know that it was called Youngwolam at that time. Although it is indicated as ‘Bukaksa’ in 『Icheonbueupji』(1871), it is indicated as ‘Youngwolam’ in 「Gyeonggijawodoicheonbuilgyengjido」(1872), which is a map of 『Icheoneupji』. It was mentioned as ‘Bukaksa’ by Youngwol Nanggyu, the book(geographic book) published by government has called commonly ‘Youngwolam’ recognizing the achievement of Youngwol who reconstructed the temple. In this way, since the mid 19th century after Youngwol Nanggyu died, the temple has been called ‘Youngwolam’. After the temple was destructed in 1899 and reconstructed(1911) by Boeun, it has been officially called ‘Youngwolam’. Youngwolam has been a branch temple of Bongeunsa, main temple of Hanyang area and Yongjusa, main temple of Gyeonggi-do, which were in the center of relationship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main axes of local history and culture. After that, the temple qualification of Youngwolam has been maintained by Seo Chang-Su, Lee Chun-Eung, Yu Shin-Am, Park Chun-Geun and Jo Eon-Woo. Since chief priest Kim Myung-Chil planned the reconstruction of fallen Buddhist sanctuary, Kim Hae-Ong, Gyeun, Seongryeon, Toegyeong Sangro, Ki |
目次 | Ⅰ. 문제와 구상 298 Ⅱ. 경기 남부의 불교 역사와 문화 301 Ⅲ. 北嶽寺 시기의 역사와 인물 308 1. 浮石 義湘 308 2. 北嶽 山岳 309 3. 懶翁 惠勤 311 4. 映月 朗奎 313 Ⅳ. 映月庵 시기의 역사와 인물 316 1. 映月 普恩 317 2. 明七 晴一 320 3. 退耕 相老 323 4. 桂雲 成鍊 324 Ⅴ. 北嶽寺名의 복원과 이천 문화 구심 325 Ⅵ. 정리와 맺음 327 |
ISSN | 12250945 (P) |
點閱次數 | 203 |
建檔日期 | 2021.11.09 |
更新日期 | 2021.11.09 |
|
建議您使用 Chrome, Firefox, Safari(Mac) 瀏覽器能獲得較好的檢索效果,IE不支援本檢索系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