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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제의 「주해대품서」에서 보이는 승랑(僧朗)의 영향=Seung-rang’s Influences in Zhù-jiě-da-pǐn-xù of Liáng-wǔ-d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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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者 |
김성철 (著)=Kim, Sung-chul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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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處題名 |
한국불교학=韓國佛教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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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期 | v.53 n.0 |
出版日期 | 2009.02 |
頁次 | 171 - 201 |
出版者 | 한국불교학회 |
出版者網址 |
http://ikab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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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地 | Korea [韓國] |
資料類型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使用語言 | 韓文=Korean |
附註項 | 저자정보: 동국대(경주) 불교학과 교수. |
關鍵詞 | 승랑=Seung-rang; 양무제=Wǔ-dì; 주해대품서=Zhù-jiě-dà-pǐn-xù; 중도불성론=Zhōng-dào-fóxíng-lùn; 오시교판=Wǔ-shí-jiào-pàn |
摘要 | 양무제는 512년 섭산에 파견했던 열 명의 승려를 통해 간접적으로 僧朗의 가르침을 받아 대승으로 전향했다고 한다. 현존하는 양무제의 저술 중 「注解大品序」에서 승랑의 영향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二諦是敎論’과 ‘無依無得의 사상’ 그리고 ‘中道佛性論’과 ‘五時敎判에 대한 비판’으로 양무제 당시 다른 승려들의 불교관과 상반된다. 「주해대품서」는 양무제가 『대품반야경』을 친히 주석하면서 작성한 서문인데 문제가 되는 것은 양무제가 『대품반야경』을 주석한 시기가 사료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그 이유에 대해 해명하였다. 또 양무제는 ‘眞神佛性論’의 주장자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주해대품서」 저술 이전의 사상이었다. 오시교판에 대한 비판의 경우도 그 공격 대상이 삼대법사를 포함한 양의 고승대덕들이었다. 얀샹원(顔尙文)은 양무제의 『대품반야경』 주석 작업이 승권에 대한 황권의 강화와 유관하다고 분석한 바 있으며 「주해대품서」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이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삼론학의 중흥조인 승랑은 양무제의 황권확립을 위한 이데올로기의 제공자이기도 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find out Seung-rang(僧朗)’s influences in ‘Liáng Wǔ-dì(梁無帝)’s Zhù-jiě-dà-pǐn-xù(注解大品序)’. In the year of 512 C.E., Wǔ-dì sent ten monks to Shè-shān(攝山) to get an education from Seung-rang. Since then, Wǔ-dì has converted to Mahāyāna Buddhism. We can find four kinds of Sān-lùn(三論)’s thoughts or philosophical attitudes in Zhù-jiě-dà-pǐn-xù. The one is Èr-dì-shì-jiào-lùn(二諦是敎論), the other is Wù-yī-wù-dé-lùn(無依無得論), the third is Zhōng-dào-fó-xíng-lùn(中道佛性論) and the fourth is the criticism on Wǔ-shí-jiào-pàn(五時敎判) theory. These thoughts are against the monks in Jīn-líng(金陵). There have been disagreements about ‘the year of publication of Zhù-jiě-dà-pǐn-xù’. First I explained such disagreements and concluded that Zhù-jiě-dà-pǐn-xù was composed after the influence of Seung-rang. Traditionally Liáng-Wǔ-dì was said to have not asserted the theory of Zhōng-dào-fó-xíng-lùn(中道佛性論) but have maintained the theory of Zhēn-shēn-fó-xíng-lùn(眞神佛性論). Zhēn-shēn-fó-xíng-lùn is well expressed in Wǔ-dì’s Shén-míng-chéng-fó-yì-jì(神明成佛義記). As a result of investigation I concluded that Zhù-jiě-dà-pǐn-xù is preceded by Shén-míng-chéng-fó-yì-jì. Not only Wǔ-dì but also his son Zhāo-míng-tài-zǐ(昭明太子) took a stand against the monks of Jīn-líng(金陵). Taiwan scholar Yán-shàng-wén(顔尙文) insisted that Wǔ-dì’s new interpretation on Buddhism is related to political hegemony. He wrote that Wǔ-dì tried to strengthen his politico-religious power against the monks and aristocrats of Liáng dynasty. In this study I realized that Yán’s opinion is reasonable. Wǔ-dì seems to have received Seung-rang’s interpretation willingly and used it as a new ideology to govern his empire. |
目次 | Ⅰ. 승랑의 양무제 교화와 그 문제점 172 Ⅱ. 양무제의 「주해대품서」 저술 시기 178 Ⅲ. 진신불성론에서 중도불성론으로 182 1. 「주해대품서」 의 중도불성론 182 2. 양무제가 진신불성론을 주장했던 시기 184 3. 중도불성론의 연원과 승랑의 역할 188 Ⅳ. 오시교판에 대한 양무제의 비판 189 Ⅴ. 양무제의 불교국가 건립과 승랑 194 |
ISSN | 12250945 (P) |
點閱次數 | 164 |
建檔日期 | 2021.11.23 |
更新日期 | 2021.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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