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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法華經戒環解’의유통과 사상사적 의미고려후기 天台宗의 사상 경향에 대한 일고찰=The Circulation and Significance of ‘Beophwa gyeong Gyehwan hae’ around the Late Goryeo A Study of the Philosophical Trend of Cheontae Jong around the Late Goryeo
作者 박광연 (著)=Park, Kwang-yeon (au.)
出處題名 불교연구=佛教研究=Bulgyo-Yongu
卷期v.38 n.0
出版日期2013.02.28
頁次261 - 299
出版者韓國佛教研究院
出版者網址 http://kibs.or.kr/xe/
出版地Korea [韓國]
資料類型期刊論文=Journal Article
使用語言韓文=Korean
附註項동국대학교 HK연구교수
關鍵詞Beophwa gyeong=法華經=Lotus Sutra=법화경; Cheontae Order=天台宗=천태종; Baengnyeon Association=白蓮結社=the White Lotus Association=백련결사; Gyehwan=戒環; Yowon=了圓; Hyusangin=休上人; Sinjo=神照; Myohye=妙慧; 만의사; 懶殘子; 법화경요해
摘要이 글에서는 고려후기에 간행된 ‘법화경 계환해’의 현존 판본을 조사하고, 그 간행 배경 및 사상사적 의미에 대해 재고찰해 보았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법화경 계환해[法華經要解]는 송의 임제종 승려 戒環이 화엄과 법화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법화경』을 주석한 것이다. 때문에 고려후기 천태종의 사상 경향을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서책이다. 선행 연구에서 계환해가 1240년 백련결사에서 처음 간행되었고, 이후 고려후기 법화경은 대부분 계환해였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런데 계환해 관련 현존 판본과 문헌 기록을 조사해본 결과, 계환해가 1240년 백련결사 보현도량에 처음 간행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후 우왕대인 1382년에 가서야 다른 판본이 나온다. 문헌상에서도 1380년대에야 계환해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 1240년 백련결사 간행본의 발문을 보면, 이때의 계환해 간행은 집정자 최우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1240년 이후로도 법화경 원전본이 다수 간행되었음은 물론, 고려후기에 유행한 법화경 사경은 원전본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 계환해가 원전본 및 다른 주석서들보다 성행하게 되는 직접적인 배경은 우왕대(1375~1388) 간행본에서 찾을 수 있다.
1380년대에 들어 천태종에서는 화엄의 수용 및 계환해의 간행․보급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조인규 가문의 세력 위축이라는 여건 변화와 임제선풍의 급속한 확산이라는 외부적 상황에 직면한 천태종의 생존 전략이라고 판단된다. 천태종의 고유성, 차별성만을 강조하지 않고, 화엄이나 선과 같은 다른 사상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계환해 관련 기록에 천태종 승려 了圓(懶殘子), 休上人, 神照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고려말 천태종을 이끌던 妙慧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1392년 고려말 천태종의 本寺인 만의사에서 행해진 법회에서는 330명의 천태종 승려가 참여한 가운데 계환해를 강의하였다. 이는 고려말 조선초가 되면 대부분의 천태종 승려들이 계환해를 수용하였음을 말해준다. 고려후기 천태종이 백련사계와 묘련사계로 나눠져 있었다는 견해가 있는데, 계환해 수용 태도에서는 이러한 구분을 찾기가 어렵다.
계환해는 조선시대에 들어 더욱 활발히 간행되었다. 고려말 판본을 복각하기도 하고 새롭게 판각하기도 하였다. 특히 1405년 조계종 승려 信希가 발원하고 成達生이 직접 필사에 참여하여 전라도 안심사에서 간행한 판본은 이후 계환해 유행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본 연구는 계환해의 유통 상황을 통해 고려후기 천태종, 나아가 불교계 전반의 사상 경향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This paper investigated the extant edition of ‘Beophwa gyeong Gyehwan hae (法華經戒環解= 法華經要解, the Gyehwan's Interpretation of Lotus Sutra)’ which was published around the late Goryeo (高麗) period, and examined the background of the publication and it's philosophical significance.
The short contents of Beophwa gyeong Gyehwan hae is as follows: Beophwa gyeong Gyehwan hae is the commentary of Beophwa gyeong (法華經) written by monk Gyehwan (戒環) of Song Dynasty, which emphasized the homogeneity of Beophwa (法華) and Hwaeom (華嚴). Accordingly, this text is very important to understand the trend of Cheontae Jong (天台宗)‘s philosophy around the late Goryeo. In the previous study, there was assertion that Gyehwan hae was first published in 1240 at the Baengnyeon Association (白蓮結社 the White Lotus Association) and the most of the Beophwa gyeong was Gyehwan hae version around the late Goryeo perions. According to the examination of the bibliography and the extant versions, it is quite evident that Gyehwan hae was first published 1240 at the Baengnyeon Association.
However, there appeared another version in 1382 around the King U (禑王1375-1388) period. According to the bibliography, the records related to Gyehwan hae are found around in 1380's. In the preface of the Baengnyeon Association edition in 1240, the publication of Gyehwan hae was asked by the powerful ruler Choi U (崔瑀). Since 1240, the original Beophwa gyeong (translated by Kumārajīva 鳩 摩羅什) was published many times and the copying of was made also through the original Beophwa gyeong. Therefore, the background origin of the prevalence of Gyehwan hae than the other versions can be found directly in the edition of the King U (禑王). In the 1380's, Cheontae Order seemed very active in accepting Hwaeom doctrines and the publication and propagation of Gyehwan hae. The trend was the strategy of survival of Cheontae Order which faced the shrinking of Jo In-gyu (趙仁規) family and the rapid spread of Linji zong (臨濟宗). That's the reason why Cheontae Order didn't emphasize the originality of Cheontae. It rather showed the effort to communicate with other schools such as Seon and Hwaeom thoughts.
According to the record related to Gyehwan hae, such Cheontae monks as Yowon (了圓), Hyusangin (休上人), and Sinjo (神照) appeared in the texts. They are all related directly or indirectly to Myohye(妙慧) who led Cheontae Order around the late period of Goryeo. The famous Dharma-assembly in 1392 at the Maneui-sa (萬義寺) Temple, the headquarter of Cheontae Order, Dharma-talk concerning Gyehwan hae was given among 330 Cheontae Order monks.
This showed most of the Cheontae Order monks at the end of Goryeo and the early period of
目次Ⅰ. 머리말 264
Ⅱ. 계환해의 간행 현황 266
Ⅲ. 고종대 계환해 간행의 배경 270
Ⅳ. 우왕대 계환해 간행의 배경 279
Ⅴ. 고려말 조선초 법화경 계환해 보급의 사상사적 의미 287
Ⅵ. 맺음말 292
ISSN12253154 (P)
點閱次數150
建檔日期2022.01.16
更新日期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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