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신라 태현찬 『약사경고적기』의 현전 최고본의 현황과 서지사항을 소개하는 한편 국내외에 전존하는 여러 간사본의 저본 및 계통과 그 의의를 검토하였다. 『약사경고적기』는 국내에서의 전존은 확인되지 않고, 일본에 필사본을 비롯하여 간·사본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약사경고적기』의 최고본의 상황은 1304년에 간행된 사실을 전하는 미노부문고(身延文庫) 필사본과 1649년 간행 도요대(東洋大) 소장본에서 살펴볼 수 있다. 기타 간본으로는 1655년(承應4)과 1675년(延寶3) 간행본이 있다. 『약사경』의 삼국 수용을 살펴보면, 제1역인 『관정경』, 제2역인 수나라 달마급다가 616년에 역경한 『약사여래본원경』은 삼국의 불교 교류 특히 승려의 구법 활동을 통하여 전승되었을 것으로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제3역인 현장역 『약사유리광여래본원경』의 수입은 비슷한 시기 나당 교류 특히 신라의 입당구법승인 신방, 도증, 승장 등의 역할을 추정할 수 있다. 제4역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은 706년 이후 더 나아가 730년 『개원석교록』에 의한 사본대장경에 포함되어 수용되었을 것이다. 『약사경』의 주석은 현장역에 대한 주석서가 다수이다. 제1역본과 혜간역에 대한 주석은 확인되지 않고, 제2역에 대해서는 혜관의 『약사경소』가 현전한다. 제3역인 현장역에 대해서는 고려전기 1090년에 편찬된 의천의 『교장총록』에는 7종의 『약사경』장소가 확인되며, 1094년에 편찬된 일본의 『동역전등목록』에는 8종이 수록되는 등 모두 12종이 확인된다. 태현의 『약사경고적기』는 『범망경고적기』를 비롯한 태현의 찬술들과 함께 일본에 전해졌다. 『약사경고적기』는 태현의 『범망경고적기』가 751년 정창원문서 「경소본출입장안(經疏本出入帳案)」에 확인된다. 『약사경고적기』의 서명이나 내용의 명확한 인용은 13세기 후반의 기록에서 확인되며, 특히 1304년에는 『약사경고적기』의 간행과 필사가 이루어졌고, 17세기에는 다수의 목판본이 간행되었다. 『약사경고적기』의 주석사상의 특징과 의의를 살펴보았다. 『약사경』에 대한 주석서는 주로 유가유식학 계통에서 연구되었다. 현장역에 대한 『약사경소』의 저자 정매, 신태, 의영, 도륜, 규기, 태현 등은 모두 유가유식학을 연구하고 관련 저술을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현장의 신역 역경활동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유식학 연구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This paper is a study of the present status and bibliography of the current edition of Silla Taehyeon's Yaksagyeong-Gojukgi. In addition, this paper examines the history and system of several books, which existed both at home and abroad, and their significance. The circumstances surrounding of the oldest book of Yaksagyeong-Gojukgi can be found in the book of the MinobuBunko (身延文庫) and the Toyo University (東洋大) 1649 publication, which contains the records published in 1304. Other publications occurred in 1655 (承應4) and 1675 (延寶3). It is difficult to specify the timing of the importation of the three kingdoms of Yaksagyeong, which had been handed down through Buddhist interchange, especially through the activities of monks. The importation of the Yaksayuligwangyeolae-bonwongyeong, translated by Xuanjang (玄奘) can presume the role of Silla monks, such as Sinbang (神昉), etc. The Yagsayuligwangchilbul-bonwongongdeoggyeong could be imported after 706. Also, it would have been imported into the Tripitaka (大藏經), completed in China in 730. Tae-hyeon's Yaksagyeong-Gojukgi was confirmed in Shōsōin-monjo (正倉院文書) in 751. Japanese Zenzu (723-797), especially, made a Yaksagyeongcho by utilizing the Yaksagyeong- Gojukgi. Therefore, it can be seen that the book was transmitted to Japan from 751 to 797. The commentary on Yaksagyeong was mainly studied in the field of Yogācāra Buddhism. The authors of Yaksagyeongso, Chingmai (靖邁), Shintae (神泰), Uiyoung (義榮), Doryun (道倫), Kuiji (窺基), and Tae-hyeon (太賢), all left research and writings on Yogācāra Buddhism. This is related to the study of scripture translation by the Xuanzang(玄奘). In particular, it is understood that this was part of the study of Yogācāra Buddhism.
目次
I. 머리말 57 II. 『약사경고적기』의 현황과 서지 58 III. 『약사경』의 수용과 주석서 63 IV. 『약사경고적기』의 편찬과 유통 71 V. 『약사경고적기』의 의의 75 VI. 맺음말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