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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승려 賤人身分說의 재검토 -高橋亨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Criticism on the argument that Buddhist monks in the Joseon dynasty were from the lowest classes
作者 손성필 (著)=Sohn, Seong-phil (au.)
出處題名 보조사상=普照思想=Journal of Bojo Jinul's Thought
卷期v.40 n.0
出版日期2013.08
頁次51 - 81
出版者普照思想研究院
出版地Korea [韓國]
資料類型期刊論文=Journal Article
使用語言韓文=Korean
附註項저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關鍵詞조선시대 불교; 승려; 신분; 賤人; 八賤; 都城出入; 良人;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 『李朝佛敎』; Joseon dynasty; Buddhist monks; the lowest classes; common classes; Takahashi Toru; Buddhist history
摘要高橋亨은 조선조 중엽 이후 승려가 八賤의 하나로 취급되어 도성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까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왔다. 그러나 『실록』, 법전, 호적, 문집, 고문서 등의 여러 당대 사료를 통해 볼 때,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다. ‘八賤’은 조선시대 당대 사료에는 전혀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며, 『受敎輯錄』과 『續大典』에 규정된 양인의 천역인 七般賤役에서 착안하여 근대기에 형성된 관념인 것으로 보인다. 승려의 도성출입 규제는 신분이 천한 승려의 도성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리학 이념에 따라 도성의 풍속을 교화하기 위한 조처였다. 17세기까지는 사실상 그 규제가 실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18세기 초에 주로 서울 근교의 하층 승려, 특히 비구니의 도성 출입을 막기 위해 법제화되었으나, 공적인 사무로 인한 승려의 도성출입은 18세기 말까지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었다. 더구나 지방 사찰을 중심으로 활동한 당시의 불교계에 대한 실질적 규제 조처라고 볼 수 없다. 조선시대의 승려는 단일 신분층이 아니라, 여러 신분층이 수렴된 복합적 특수계층이었다. 신분, 직역, 관직, 시기,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한 층위의 승려가 있었고, 그 층위에 따라 국가나 사회로부터 일정한 특권이나 지위를 인정받기도 하였다. 대체로 良人 승려가 수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승려 관료층인 僧職者, 면역 특권층인 度牒僧이나 僧通政·僧嘉善, 불교계 문파의 宗匠·講伯과 같은 상층 승려가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그러므로 승려층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여 조선 신분제 사회에서 그 성격, 역할, 위상 등이 구체적으로 규명되어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금까지 역사 현실과 크게 다른 역사상이 널리 수용되어 온 것은, 승려를 신분층으로 오해하고, 승려층 내부의 여러 층위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하층 승려상을 승려층 전체로, 조선시대 전체로 일반화한 기존 역사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19세기의 불교계가 그 이전에 비해 현저히 쇠락한 양상을 보였다는 것도 주목되는 점인데, 이는 근대기에 형성된 조선시대 불교의 역사상이 19세기 불교계의 쇠락상을 조선시대 전체에 투영하여 형성된 것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조선시대 불교사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심화되는 한편, 근대기의 조선시대 불교 역사상의 형성 과정도 함께 규명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It has been accepted that Buddhist monks in the Joseon dynasty were from lowest classes (賤人). This was argued by Takahashi Toru (高橋亨), who was Japanese historia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is still broadly accepted. However there is no obvious ground to support this argument. This argument has been discussed based on two other arguments which were: that Buddhist monks were from one of the 8 lowest classes in the Joseon dynasty; and that they were banned to enter the capital city because they were from lowest classes. However there was no concept of the 8 lowest classes in the Joseon dynasty. In addition, it was in the late 18th century when Buddhist monks were banned to enter the capital city. Moreover they were not banned because of their social class. Based on the analysis of the official chronological historiographies, the legal codes, the household register and so on, it seems that Buddhist monks in the Joseon formed a special class, covering people from various social classes, and the majority of them were from common classes (良人). Therefore it appears that the argument of Takahashi is not correct, and accordingly the historical view of the Buddhism in the Joseon dynasty based on his theory must be reconsidered.
目次머리말 55
1. 승려 八賤說의 허구성 57

2. 승려 都城出入 규제의 실상 62
3. 승려층의 다양성과 특수성 맺음말 67
ISSN12297968 (P)
DOIhttp://doi.org/10.22859/bojoss.2013..40.002
點閱次數19
建檔日期2023.01.30
更新日期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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