戒.定.慧의 三學을 불교의 지표라 할 때, 無戒를 표방하는 신란의 정토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본 논문의 과제이다. 이 과제의 수행 을 위해 먼저 신란 이전의 일본불교 계율 상황을 고찰하면, 나라시대의 계율은 鎭護國家를 위한 주술적 성격이 강했으며 또한 「僧尼令」에 속박 되어 계율의 수지가 곧 비불교로 이어지는 기이한 상황을 초래했다. 이 러한 상황은 헤이안시대에도 이어졌지만 사이쵸의 등장으로 인해 소승 계로부터 대승계가 독립되어, 형식적 측면보다 계율정신을 강조하는 계 기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대승계의 흐름은 호넨에게 이어져 정토교에 있어서 계율의 문제가 야기되었다. 호넨은 專修念佛을 표방해서 계율을 雜行으로 간주했지만, 그 자신은 持戒堅固한 淸僧의 삶을 살았다. 그러 나 호넨의 제자인 신란은 공공연하게 無戒를 선언했던 것이다. 신란이 계율을 부정했던 것은 眞實他力의 입장에서이지 방편으로서의 계율까 지부정했던것은아니다. 다만계율을통해성불하고자하는自力에의 지하려는 마음을 경계했던 것이다. 持戒가 불가능한 범부중생에게 있어 서는 오로지 他力만이 진실이다. 따라서 타력의 行者에게는 持戒라든가 破戒와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란정토교가 無戒를 내세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